다 안다고 생각했던 많은 '말'들의 무게
꽤 오랫동안 자유를 꿈꿨다.
자유롭게 세상을 여행하는 사람들을 동경했고 거대한 힘 앞에 혈혈단신으로 맞서 싸운 수많은 돈키호테를 경외했다. 갓 스무 살, 어른이 된 나는 처음으로 인생을 장악하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불안감과 해방이 뒤섞인 기묘한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이성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해 보았고, 멋들어진 양복을 꺼내 입고 어른 흉내를 내 보았고, 배낭에 의지해 히말라야의 어느 산골짜기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변치 않는 우정을 이야기했던 친구가 있었다. 친구라는 말이 너무 쉬워진 요즘에는, 친구라는 말로도 많이 부족한 인연이었다. 대학에 가서도 변하지 말자고 했고, 변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나 고맙고 소중한데, 서로 이렇게까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우리밖에 없는데 어떻게 변할 수가 있겠어. 그랬던 친구를 이제는 SNS의 친구 목록으로만 다시금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말'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말을 하고, 듣고, 기록으로 남기며 살아간다. 자유를 말하기도, 사랑이나 우정을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언제, 누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인다. 스무 살의 자유와 스물네 살의 자유는 다르다. 우리는 지금도 술집에서 만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다'라고 한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말이 쇼펜하우어의 말과 같은 무게를 갖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무리 '내 작품은 오리지널 입니다!' 하고 소리쳐 본 들 그런 소리는 대부분 바람에 날려가 사라져 버립니다. 무엇이 오리지널이고 무엇이 오리지널이 아닌가, 그 판단은 작품을 받아들이는 사람(독자)과 '합당한 만큼 경과한 시간'의 공동 작업에 일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
같은 말도 누가, 어떻게, 왜 하느냐에 다라 달라진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들도 아주 예전에 이미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가족이 소중한 줄, 엄마 품이 따듯한 줄, 사랑이 마냥 좋을 수만은 없으며 우정이 항상 영원하지도 않다는 것을.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는 도중에 조금씩 그것을 새로이 깨닫는다.
말에도 세월이 깃드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떤 이는 '시간은 사건의 축적'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말은 '사건의 축적'이 되는 셈이다. 사람은 자신의 말을, 자신의 인생을 통해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1+1=2와 같은 명제를 증명하는 데 열의를 다하는 수학의 증명처럼, 아주 단순하고 당연한 말을 평생에 걸쳐 새로이 깨닫고,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까. 내가 노래했던 자유가, 다 안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지금은 몰라도, 그때는 틀렸던'이유는 말이라는 것이,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기'때문이 아니었을까.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작품이 적어도 연대기적인 '실제 사례'로 남겨질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즉 납득할 만한 작품을 하나라도 더 많이 쌓아 올려 의미 있는 몸집을 만들고, 자기 나름의 '작품 계열'을 입체적으로 구축하는 것입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