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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곰돌이 Nov 09. 2018

성평등 선진국, 네덜란드는 어떻게 이민자를 차별할까

네덜란드는 세계 최초로 동성애 결혼 합법화를 이뤄 낸, 성소수자 이슈에 관한 한 공인된 선진국이다(어디 네덜란드가 선진국 아닌 게 있겠냐마는). 성평등 수준을 살펴보더라도 유엔 개발계획이 2018년 발표한 성 불평등지수에서 스위스, 덴마크에 이은 세계 3위로 10위인 한국(아시아 1위) 보다 좀 더 앞서 있다.


네덜란드는 페미니즘의 역사에서도 그 이름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1785년에는 네덜란드 공화국의 한 도시에서 여성을 위한 과학협회가 처음으로 설립되며 과학을 다루는 여성 잡지들이 대중화되었다. 1872년에는 세계 최초로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을 제정하기도 했다. 네덜란드는 여전히 칼뱅파 신교도들이 목소리를 유지하고, 정계로 진출함에도 주요 도시에 매매춘 허가 구역이 설정되어 정부 차원에서 치안과 건강검진을 성 노동자들에게 제공하고, 법의 울타리 안에서 노동이 일어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드문 국가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페미니즘이 탄생했고, 사회 속에 조화를 이루며, 전반적으로 그 이해도가 높은 축에 속하는 (사회와) 사람들이 네덜란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네덜란드에서도 최근 들어 학계를 중심으로 네덜란드인들의 이민자 차별/배척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학자들은 네덜란드의 '성 가치관'이 무슬림 이민자를 차별하고 배척하는 여론을 형성하는 데 탁월한 무기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독일, 프랑스, 덴마크 등 이민자/난민에 대한 혐오 정치가 힘을 얻고 있는 유럽 국가 곳곳에서 이러한 성 가치관은 유용한 방패이자, 무기가 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네덜란드 사회는 진보적 가치와 개인적 자유를 지지하는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진보적 가치관을 향한 경향성은, 때때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강제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주류의 진보적인 정치적 관점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시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도 한다. '다르게 생긴 사람'들은 차별하지 않을지 몰라도,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차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네덜란드식 진보주의'는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는 이민자들이나 종교적 소수자들이 네덜란드 사회에서 주변부로 밀려나게 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화 보호주의자들은 네덜란드와 유럽의 가치관을 '현대적'인 것으로, 무슬림 이민자들을 '동성애 혐오적이고, 후진적 성 관념을 갖고 있으며 전통적 가족상과 종교적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 따라서 배척해 마땅한 사람들로 규정하고 있다.


무슬림 이민은 네덜란드의 진보적이고 도덕적인 질서에 대한 위협이고, 문화 보호주의자들은 이에 맞서 네덜란드의 문화적-성적 자유를 수호하는 사람들로서 그 정치적 정당성을 획득하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이 문화 보호주의자들은 마찬가지로 보수적인 기독교(미국 남부의 기독교 신자들은 혼전순결을 강조)나 유대교(이스라엘의 성평등지수는 한국보다 낮은 20위이다)에 대해서는 필수적인 서구 가치들의 보조를 받아 '계몽'에 이르렀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점이다. 유엔 개발계획 성 불평등지수 43위를 기록한 미국, 81위의 아르헨티나와 50위의 사우디아라비아, 44위의 카타르 가운데 과연 성적으로 더 불평등한 국가, 그리고 성적으로 더 불평등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국민들은 어느 쪽이라고 판단해야 옳을까?


안타까운 점은, 무슬림 이민자들의 배척에서 이 선동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무슬림 이민자들이 배척된 다음에는 성평등지수 127위의 인도(힌두교),  53위를 기록한 러시아(동방정교회-동성애 혐오범죄가 쉽사리 처벌되지 않는 곳으로 악명이 높다), 그다음에는 동양의 유교국가들이라고 배척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그 다음에는 서유럽에 비해 뒤떨어지는 동유럽, 남유럽의 이민자가 배척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종교적 잣대를 대신해 문화의 차이를 인식하고 통합을 지향하는 이민정책이 하루빨리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권은 인간의 것이고, 인간은 우리들에게만 적용되는 개념이 아니다.


인권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언젠가는 가족의 밥상에서, 아버지와 딸의 카톡메시지에서도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References>
1. Mepschen, Paul, Jan Willem Duyvendak, and Justus Uitermark. "Progressive politics of exclusion: Dutch populism, immigration, and sexuality 1." Migration and Citizenship 2.1 (2013): 8-12.
2. Mepschen, Paul, Jan Willem Duyvendak, and Evelien H. Tonkens. "Sexual politics, orientalism and multicultural citizenship in the Netherlands." Sociology 44.5 (2010): 962-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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