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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곰돌이 Dec 03. 2018

런던 집단폭행 사건 촛불시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25일 런던 중심가에서 열린 촛불시위, 더 강한 연대와 소통이 필요한 때

*이 글은 11월 24일, 오마이뉴스 민족/국제면 으뜸 기사로 선정되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 11월 17일 저녁, 독일 아헨에서 친구와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였다. 우리 자리 바로 뒷편에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백인 여자아이와 8살 정도 되어 보이는 백인 남자아이가 타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일행에게 쓰레기를 던지며 키득거릴 때 까지만 해도 '좀 심하네'라고 생각했을 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일행이 내린 뒤 아이들은 목표를 바꿔 우리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독일어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독일어로 이야기하다가, 들고 있던 풍선으로 머리를 툭툭 치며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당장 그만두라고 경고했지만 '너 영어 할줄 알아?'라고 비꼬면서 앵무새처럼 우리 말을 따라했다. 현지인과 시비가 붙으면 불리하다고 생각했기에 우리는 잠자코 견뎌야 했고, 버스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15분 동안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난 11월 15일에는 페이스북에서 영국의 어느 한국인 유학생이 런던 시내에서 영국인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여성이 폭행당한 이유는 자신에게 쓰레기를 던지는 영국인들을 피하지 않고, 항의했기 때문이었다.

함께 있던 친구가 수차례 경찰에 전화를 걸었음에도 영국 경찰은 '지금 가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고, 폭행이 일어난 장소에 있던 CCTV는 확인하는데 몇 달은 걸린다고 했다(현재는 한국 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10여 개의 CCTV를 확인하였으나, 신원을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맞은 사람은 있는데 때린 사람은 없는 셈이었다.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사건 이후 1주일 정도가 지났지만 여전히 백인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자리를 피하게 되고, 움츠러들었다.

영국에서 있었던 폭행 사건 이후 변화를 감지한 것은 다른 유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독일에 있는 A양은 "날이 어두워지는 대여섯시 이후에는 집밖 외출을 삼가고 야외 활동을 줄였다"고 했다.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반응도 있었다. 영국에서 1년간 어학연수를 한 뒤 네덜란드에서 석사 과정에 있는 B씨는 "영국, 독일은 원래 그런 곳"이라며 "런던 바깥의 도시들에서는 이전에도 인종차별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해 왔다"고 말했다.

독일에서 거주 중인 C씨는 "인종차별은 일상"이라며 "일상이 되어버린 일을 무시하고 넘기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했다. 우리는 왜 당하는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상황이 나아지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한국의 경우, '특정 지역 출신자들이 국내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라는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지난 7월 13일 마감된 청와대 국민청원에서는 '자국민의 치안과 안전에 위협을 끼치고, 불법체류 등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난민 입국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70만명 이상의 서명을 받았다.

난민들이 유럽에서처럼 특정 종교를 내세워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종교나 피부색과 같은 생김새가 유사한 사람들을 사회에서 가려 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에서 힘을 얻고 있는 여론도 이와 비슷하다.


암스테르담 대학교 멥센(Mepschen) 박사 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네덜란드의 진보적이고 관용적인 사회문화를 지키기 위해 외부인의 유입을 제한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런던 집단폭행사건을 이러한 심리의 연장선상에 두고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주말 저녁의 런던 시내에서 집단폭행이 일어난다는 것은 단순히 외부 문화 유입에 대한 두려움으로 해석할 수 없는, 심각한 범죄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별다른 사회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뿐더러, 유럽 사회의 주류적 가치관과 충돌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을 표적으로 한 유럽인들의 광범위하고 일상적인 인종차별 표현과 적대 행동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캐나다 명문 칼튼 대학교(carleton university) 국제대학원 스티브 사이드먼(steve saideman)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와 진행한 2013년 5월 인터뷰에서 그 실마리를 제시한 바 있다. 그는 "인종간의 충돌은 인구밀도가 높은 사회보다 파편화된 사회에서 더 많이, 극단적으로 발생한다"면서 "파편화된 사회는 분리주의를 촉진하며, 다른 집단을 공격할 기반을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사이드먼 교수는 파편화된 사회를 "사회의 서로 다른 계층, 그룹들을 이어주던 소통과 연결고리가 끊어진 사회"라고 설명했다.

계층/그룹 간 소통과 연결이 이토록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대부분의 '이민자 통합/적응 정책'에서 핵심으로 여겨지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민자와 현지인이 차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오해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서로 다른 문화권 간의 교류와 대화가 활발해지면 몰이해/편견으로부터 비롯되는 인종차별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유럽에서는 파편화/개인화 되어가는 유럽 사회가 구성원 간 소통 부족을 악화시켰고, 정교한 정책논의 없이 난민의 무조건 수용으로 인한 부작용과 민족주의적 구호가 커지면서 사회 구성원들 간의 소통이 어려워졌다.

이처럼 편견, 몰이해, 불만이 축적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사람들은 희생양을 찾으며, 이는 사회의 가장 아래층에 다다르기까지 반복된다. 고소득자에서 저소득자로, 저소득자에서 타인종으로, 타인종에서 흑인/무슬림 혹은 아시아인으로, 마지막에는 '외국인' 혹은 '유학생'으로까지 차별과 폭력의 고리는 촘촘하게 이어져 있다.

뾰족한 잘못이 없는 한국인이 '집단 폭행'의 표적이 된 것도 영국 사회에서는 훨씬 더 소수자의 입장에, 인권의 사각지대에, 그러므로 몰이해와 편견의 짐을 홀로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원더>에는 이런 말이 있다.

"당신이 만나는 모든 이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부디 그들에게 친절해주세요." 


25일(현지시간) 런던 중심가인 옥스퍼드 서커스의 마크스 앤 스펜서(Marks & Spencer) 앞에서 열리는 '런던 집단폭행 사건을 규탄하는 촛불시위'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날의 사회 구조에서는 누구나 불합리한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주체가 될 수 있다. 영국만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며, 유럽에 가지 않는다고 평생 신경쓰지 않아도 될 일이 아니다. 앞으로도 한동안 차별 문제는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 더 강한 연대와 소통,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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