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고 믿었으나,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스포일러 주의)
책의 주인공은 한 번의 실수로 행복을 산산조각 낸 여자 룰루 밀러다. 그녀는 여성과의 단 한 번의 원나잇으로 사랑하는 곱슬머리 남자를 잃은 뒤, 자신을 원망하며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그 절망 속에서 삶을 지탱할 뭔가를 찾다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학자의 인생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유약했던 어린시절을 뒤로하고, 스탠퍼드 대학의 학장이 된 남자. 지구상에 존재한 수 백, 수 천종의 어류에 이름을 붙인 사람. 그녀는 그가 수집한 수 천 마리의 물고기가 지진으로 분류되지 않은체 바닥에 나뒹굴 때, 어떻게 좌절하지 않고 물고기에 직접 이름표를 꽂을 생각을 했는지, 즉 어떻게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불굴의 기지로 나아가는지’ 그 비결을 알고 싶어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녀는 그의 비결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이 남자의 어두운 뒷 면을 알게 된다. 그녀의 우상이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목표한 것, 자신이 믿는 것을 관철하기 위해 사실에 눈 감고, 걸리적거린다 생각되면 사람도 죽이고, 그저 ‘목표 달성’만을 위해 불도저처럼 나아 갔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이 사람이 자기가 쫒는 롤모델이 아니라 ‘맹목적인 목표’를 향해 잘못된 선택마저도 합리화하며 ‘우생학 이론’으로 수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불행을 가져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그의 잘못된 행적을 또 다시 추적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우생학’으로 피해를 입었으나(임신 중절 수술을 강제로 집행당했다.)그럼에도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삶의 이유’가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서로 돕고 사는 애나와 메리를 보며 ‘삶을 살게 하는 것’은 서로를 지지해주는 사람들, 그 존재 자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내가 살아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 내가 죽으면 슬퍼해 줄 사람들… 그리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사람들과 나의 작은 일상들이 결국 나를 살게 하고,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들과의 만남 이후 룰루밀러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일생을 바쳐왔던 생물, 즉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우리가 ‘어류’라는 단어로 정의내리는 대상이 있다고 믿지만, 사실 ‘어류’는 없고(다 포유류나, 조류 등에 포함된다.) 우리가 그저 오랫동안 ‘어류’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어류'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사실은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회전한다고 말하기 전까지 사람들이 지구는 네모라고 믿었고, 지구가 회전함을 받아들인 후 우리가 ‘달까지 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와 맥락을 같이 한다.
나는 책을 읽으며 사회가 이미 내게 주입한 공식 때문에 ‘반드시 이래야 한다.’라고 생각하는일에 대해, 본능적으로는 ‘아니다’라고 생각한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저 ‘목표’때문에, ‘사회의 정해진 기준 때문에 내게 잘 맞지 않는 선택을 해 나가는 것은 옳은가? 에 대한 생각말이다. 책의 마지막에서 룰루밀러는 이성애자여야 한다는 스스로와 사회가 부여한 원칙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녀는 자신의 느낌을 믿음으로써 반려를 만난다. 한 번도 ‘그럴 수 있다’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마음이 시킨대로 해 봄으로써 전혀 상상하지 못했으나, 결론적으로는 행복하다고 느끼는 삶을 누리게 된 것이다.
살아가며 우리는 자신의 마음 보다는 사회의 기준과 잣대, 가이드에 따라 나의 삶의 요소들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우리에게 룰루밀러는 '네 마음이 시키는대로 해', '사회가 쏟아붓는 공식과 말은 물고기 같은거야!'하고 말하는 것 같다. '실제로는 있지 않으나, 있다고 믿는' 그런 것 말이다. 마지막으로 외부 요소가 아니라 내 마음을 기준으로 보다 많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며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