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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배진 Jun 05. 2022

당신은 흥도 많고 내향적이기도 해요.


똑부러지는 사람일  같았어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일 것 같았어요.”


나를 처음 만난 사람들이 내게 주는 피드백은 두 가지다. 하나는 ‘똑똑하고 당찬’ 이미지이고, 하나는 ‘차분하고 조용한’ 이미지이다. 똑똑하고 당찬 이미지는 어릴 때부터 쭉 있어왔던 이미지인데, 아주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 앞에서도 말을 잘해서 ‘여시(여우의 경상도 사투리)’라고도 불렸고, 중학교 시절엔 친구들이 ‘똑순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다.(욕이었을까^^;)


반면에 ‘차분한 이미지’는 자라면서 생겨난 이미지이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집은 잠자는 곳이요, 놀이터와 다른 친구네 집이 내가 있을 곳이라 생각했던 나는 꽤나 명랑한 성격이었는데 중 1 때인가 ‘해리포터’를 만나 장편 소설을 읽는 스킬을 습득하면서 나는 '책 읽기'라는 취미를 가지게 되었다. 아마 고민 많은 10대의 사춘기와 이 책 읽기가 시너지를 내면서 나는 혼자 책을 읽거나, 생각하는 시간이 늘었고 점차 차분한 사람의 이미지를 장착하게 된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전 세계를 거침없이 여행하는 한비야 작가의 여행기나, '미애와 루이 318일간의 버스여행', 류시화 작가의 지구별 여행자 등의 책을 읽으며 활동가다운 모습을 꿈꿨으나 대학에 진학하면서는 보다 ‘현실적인 꿈’을 찾으며 말 잘하고 똑 부러지는 백지연 아나운서 등이 내 워너비가 되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 앞에서든 당당한 태도로 인터뷰하는 그 지적인 미가 뚝뚝 떨어지는 아나운서가 내 워너비가 되면서 나는 보다 똑똑하고, 반듯한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사회초년생이 되었을 때는 딱히 '워너비'보다는 ‘나다운 게 뭘까?’를 더 오래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여러 사람을 만나 인터뷰도 하고, 회사 여러 부서의 사람들과 미팅도 하고, 상사들 앞에서 발표도 하는 사람으로 살면서 ‘지적인 이미지’를 장착한, 그러니까 똑똑하고 차분한 커리어우먼의 이미지를 여전히 추구했었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나는 내가 내향성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책 읽고, 카페에서 공간이나 음악, 커피를 음미하는 일을 좋아하고, 여행도 조용한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곳을 시끄러운 도시보다 더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가 얼마 전 성시경 콘서트에 다녀왔다. 당연히 좋아하는 음악 장르도 발라드나, 어쿠스틱 기타의 편안한 사운드가 매력적인 헐렁한 분위기의 곡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두세 시간 앉아서 감미로운 성시경의 노래를 듣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그렇게 쭉 두 시간 정도를 성시경의 차분하고, 때로는 활기찬 댄스 곡을 듣던 중 게스트로 나온 싸이의 무대를 접했다. 내 친구는 싸이의 흠뻑쑈에 가고 싶어 하고, 미국의 펑크 록 밴드인 그린데이 같은 가수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성향이라 싸이의 등장에 매우 열광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친구에게 꽤나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었다. '싸이가 싸이지 뭐...?' 하는. 나는 성시경의 콘서트에 와서 싸이가 온들 그게 무슨 대수인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싸이가 모두를 일으켜 세워 댄스곡을 부르자마자 캥거루처럼 뛰는 나를 발견했다. 좌석의 기본 세팅이 발라드 공연을 감상하는 좌식이었기 때문에 서서 뛸 수 있는 공간이 넉넉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싸이의 ‘소리 질러’에 누구보다 열심히 소리 지르고, ‘뛰어!’하면 또 앞뒤 신경 쓸 것 없이 하늘 높이 점프를 해대고 있었다.


신나는 싸이 공연이 끝나고, 다시 성시경의 감미로운 음악을 몇 곡 더 이어진 뒤 그날의 콘서트는 대 만족으로 막을 내렸다. 콘서트장에서 돌아 나오면서 나는 친구에게 "아무래도 내가 흥이 있는 사람 같아."라고 말했는데 친구 왈 "너 굉장히 흥이 많아, 네가 몰라서 그렇지."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어제는 고등학교 동창과 저녁을 먹다가 "내가 알고 보니 흥이 있더라고"라고 말해줬는데 그 친구 왈 "나는 십 수년 전부터 네가 흥이 있다는 걸 알았는데 너는 몰랐니?"라고 답했다. 나는 내가 시끄러운 음악이 나오는 클럽도 가지 않고 하루 온종일 뛰어야 하는 싸이 콘서트는 한 번 갔다가 기진맥진해서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에 ‘흥’보다는 ‘조용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최근의 경험을 통해 ‘나는 나를 잘 몰랐다’는 결론을 얻었다. 사실은 본성적으로는 흥이 많은 스타일인데, 대학 이후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쫒은 이미지가 지적이고 차분한 이미지이기 때문에 나를 거기 끼워 맞춰온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100% 차분하기만 한 사람도, 100% 흥만 넘치는 사람도 없다. 누구나 여러 가지 면면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나의 성향을 딱 하나로 정의해서 말의 틀에 넣는 것 자체가 과연 좋은 일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냥 좋으면 좋은 것이고, 싫으면 싫은 것인데 직관보다는 언어에 너무 기대서 나를 가둬놓았다는 생각. 나는 여전히 ‘나는 이런 사람이야.’하고 정의 내리는 부분이 많은데, 앞으로는 ‘좋고 싫음’의 감에 의지해 더 많은 것들에 열린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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