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무엇일까

세 번째 쓰기

by 박고래



“불이나면 어쩌지? 그럼 가족들을 대피시키고

내가 엄마 아빠 방에가서 저금통이랑 통장을 챙겨 나와야지.”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었을까. 가끔 누워 잠이 안오면 불이나거나, 도둑이들거나 하는 최악(?)의 위기가 떠오르곤 했다. 그럴 때 나는 머리속으로 분주히 시뮬레이션을 했다. 그 시뮬레이션의 중심에는 1)가족의 안전 2)가정경제의 안전 3)그리고 나 가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의 나는, 명실상부한 엄마의 '시장(장보기)' 메이트였고, 부부 동반 계모임 등에도 흔쾌히 동행하는 ‘부모님의 키링’ 같은 딸이었다.


언니는 사춘기가 빨랐다. 당연히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이기도 했지만 나는 갈등을 피하고

좋은게 좋은 것이라 여기는 반면, 언니는 부당하다 느끼면 그 상황을 바꾸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부모님과 언니 사이에 갈등이 있으면, 나는 늘 양쪽 사이를 오가며 갈등을 누그러뜨리며 양쪽을 잇는 오작교를 놓았다. 그렇게 청소년기엔 가족 사이에서 다리를 놓는 까마귀 역을 자처했다.


20대 초 무렵엔 벼락맞듯 엄마의 사고소식을 접했다. 엄마의 상태는 위독했고

남은 가족들 중 한 사람이 엄마 곁에서 병간호를 하기로 했다. 남은 두 사람은 ‘일상’을 지켜야 했으므로

나는 간병하는 딸의 역할을 맡았다. 중환자실에 계신 엄마를 지키고, 기적적으로 깨어난 엄마의 재활을 돕는

딸로서 나는 1년 남짓한 시간을 병원의 보조침대에서 보냈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가치있는 시간이었다.

그 시기의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었다. 가족이라는 집단은 늘 ‘나’라는 개인에 우선하는 가치였다.


‘내 가족이 힘들 때 든든한 울타리가 될 수 있는 강한 사람이 되겠다!’

사회 초년생 때, 직장 생활에서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나를 지탱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했던

큰 동력 중 하나는 ‘가족을 지키는 자’가 되겠다는 다짐이었다. 언젠가 부모님이 연로하시거나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겨도, 그것을 해결하고 집안의 평화를 지킬 수 있을만큼 강한 사람이 되길 바랐다.

왜냐면 내게 가족은 무엇보다 소중하고, 귀한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러다 서른 살 무렵, 약 2달간의 유럽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나와 2개월 간 연락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내가 없어도 가족들의 삶은

예전과 다름없이 흘러갈 수 있다는 사실을. 물론, ‘어딘가에서 내가 건강하게 잘 지낸다’의

전제는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두 달 쯤 멀리 떨어져 서로를 안본다 한들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

이 무렵, 가족은 소중하지만 우리가 ‘하나’일 수는 없다는 걸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 후로 시간이 더 흐름 지금. 나는 이제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만 자기 삶은 자기가 책임져야 하는 개인’임을 안다. 부모님이 연로하시거나 힘들 때, 언니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우리가 영영 서로를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이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 것이 ‘가족’에 대한 건강한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언젠가는 내게도 ‘원가족’과는 또 다른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생길 것이고, 그것은 또 다른 ‘가족’에 대한 정의를 만들어 줄 것 같다. 하지만 단 하나 바뀌지 않는 사실이 있다.


내가 행복해야 내 가족이 행복하고, 내 가족이 행복해야 내가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 ‘나 하나’를 희생해 모두의 행복을 빌어봤자 가족 ‘모두’의 행복이 올 수 없고, 가족 중 한 사람이 불행하다면 우리는 함께 그 불행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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