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소년의 시간」 후기 - 소년을 만든 것은?

다섯 번째 쓰기

by 박고래

사촌 언니네 집에 커다란 TV가 생겼다. 거실 천장부터 바닥까지 상하 여백이 얼마 남지 않을 만큼 커서

처음에는 좀 부담스럽더니, 이내 그 큰 스크린에 눈이 적응했다. 영화관 D열쯤 앉으면 스크린의 양쪽 끝이 다 안 보이고 화면 속 장면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되는(?)것처럼, 이 큰 TV 스크린은 내게 꽤 큰 몰입감을 선사했다.

이럴 땐 어떻게?! 넷플릭스로 보고 싶었던 콘텐츠를 봐야 한다.


어제는 ‘소년의 시간’이라는 제목의 영국 범죄 드라마를 선택했다. 나는 범죄나 스릴러 장르물을 싫어한다. 이 영화는 그저 제목이 마음에 들었고, 꽤 좋은 콘텐츠라는 평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었다. 장르나 어떤 내용인지도 모른 채, 나는 심오할 것 같아 혼자 보기를 망설였던 이 콘텐츠를 신상 초대형 TV로 보기로 했다.


영화인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4부작의 드라마였다. 드라마의 처음은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한 가족의 일상에 경찰이 난입해 범죄자를 체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이때부터 끝까지 나는 쭉 어리둥절해졌다. ‘누가 범죄자라는 거야?’하고.


경찰들은 평범한 가정집 대문을 뜯고, 실탄이 장착(된 것처럼 보이는) 총을 들고 이 집의 막내아들인 13살짜리 남자아이를 체포한다. 이후의 내용들은 이 체포된 아이가 구치소에 들어가고, 심문을 하는 등 유죄를 입증하고자 하는 경찰과, 하루아침에 흉악 범죄의 혐의를 받는 구성원을 둔 가족들, 친구들과 그 외 관련 인물들을 조명하며 진행된다.


주인공인 13살짜리 남자아이는 작고, 가냘프다. 누군가에게 극심한 해를 끼쳤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어리고 또 여려 보인다. 집에 난입한 무장경찰을 보고 바지에 소변을 보고, 부모님께는 한사코 나는 잘 못이 없다고 주장하며 악을 쓰고 운다. 그 모습을 보는 부모님은 ‘뭔가가 잘 못 되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속에는 감독이 묻어둔 ‘생각거리’가 여럿 등장한다.

과연 이 유약해 보이고 무해해 보이는 아이가 진짜 흉악범이 될 수 있는가?

진짜 이 아이가 흉악범인가?

그 동기는 무엇인가?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영화 전반의 스토리를 따라가면 보통 위와 같은 질문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하지만 나는 범죄 그 자체의 원인과 결과 보다도 소년의 부모가 가진 질문, 즉 ‘우리는 어떻게 이런 아이를 만들었는가?’하는 것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소년의 가족은 아빠와 엄마, 그리고 한 명의 누나로 구성된다. 소년이 범죄자 낙인을 찍고, 무죄를 주장하며 수감되어 생활하는 동안 가족들은 마을 커뮤니티에서 배척당한다. 뻔한 전개다. 그런데 여기서 동생보다 몇 살 터울 더 위인 누나가 좌절한 부모님을 위로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좌절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부모님을 위로한다.


평생을 성실히 살아온 소년의 아빠는 ‘소년’을 떠올리며 절망적인 어조로 아내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우리가 어떻게 저런 아이를 만들었을까?’


한편, 좌절하고 절망한 부모를 위로하는 딸아이를 보며 남편은 다시 아내에게 말한다. “우리가 어떻게 저런 아이를 만들었을까?” 아내는 답한다. “아들에게 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콘텐츠를 보는 내내 ‘과연 그 연약한 소년이 흉악범죄를 저질렀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소년이 영화 중간중간 보여주는 교활함이나 대범하고도 신경질적인 행동들을 보다 보면 ‘어쩌면’이라는 생각으로 자연히 연결된다.


한편, 어떻게 이 선량한 부모는 ‘잔혹한 소년’과 ‘용감하고 다정한 딸’을 둔 걸까. 이 대목이 내게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나 역시 늘 품어왔던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나의 형제는) 같은 부모 밑에서,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는데 왜 그토록이나 다를까?


언니와 이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눠본 적이 있는데, 언니는 ‘너와 내가 타고난 기질이 다르고, 따라서 부모와의 상호작용도 달랐을 것’, 게다가 ‘집을 벗어난 공간에서의 경험과 체험은 전혀 달랐으니 우리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었다.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때로 ‘우리는 왜 이렇게 다를까?’하는 의문을 던진다.


내 의문은 이 드라마 속 부모의 질문과 비슷하다. ‘우리는 어떻게 저런 아이를 만들었을까? 내 언니가 말한 것처럼, 부모만 자녀의 성격, 인성과 태도 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그 외적인 요소 또한 크게 작용한다. 그럼에도 부모는 ‘혹시 내가 잘못한 것은 없나?’하는 자책을 한다. 정말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부모인 내가 잘 못해서 내 자식이 잘 못 된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총 4부작인 드라마를 다 볼 즈음엔 처음에 가졌던, ‘소년이 범죄를 저지른 게 맞을까?’의 답은 ‘그럴 것 같다.’로 치우친 반면, ‘그래서 저 아이는 어떻게, 무엇 때문에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아이가 되었나?’에 대해서는 그 어떤 분명한 답도 찾지 못했다. 한 사람이 어떤 인간이 되는가? 에는 생각보다 너무 많은 요소가 영향을 미치며, 사실 그걸 알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일 같다.


요즘 거의 모든 콘텐츠가 그렇듯, 이 드라마 역시 시즌 2가 나올 것 같은 여운을 남기고 끝났다. 만약 시즌 2가 나온다면, 나는 다시 ‘그 소년이 진짜 범죄자인가?’의 질문을 그대로 품고 첫 콘텐츠를 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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