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더 잘 알기 위한 작은 실험, 호불호 리스트

열네 번째 쓰기

by 박고래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세 가지씩 적어보면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무슨 글을 쓸까 고민하다가 이 말이 떠올라, 나의 호. 불호. 에 대해 써보기로 했다.

워낙 즉흥적으로 떠올린 것들이라, 이것들이 나에 대해 뭘 말해줄 수 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것을 떠올리다 보니 즐거운 기분이 들었고, 싫어하는 것에 대해 쓸 때는 어떻게 이 비호들을 피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좀 생뚱맞지만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당신도 잠시 생각해 보시길. 길게 적지 않고 불렛 포인트를 붙여 간단히 3가지씩만 끄적여봐도 기분전환이나, 자신의 기호를 아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 3가지

산미가 느껴지는 커피

요즘 느끼는 일상의 낙은 ‘산미’가 좋은 커피를 마시는 일이다. 묵직하고 쓴 맛이 강한 강배전 커피보다는, 가볍고 산미와 쌉쌀한 맛이 조화로운 거피를 선호한다. 그래서 선택지가 있을 때는 ‘에티오피아’ 원두의 함량을 기준으로 커피를 고른다.

산미가 좋은 커피를 마실 때면 첫 모금에 느껴지는 향에 반하고, 그다음엔 입에 퍼지는 살짝 시큼하면서도 달큰한 맛에 반한다.

거의 그럴 일은 없지만, 다 식은 시점에 마시면 산미가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데 그건 또 그것대로 좋다. 해가 높이 뜬 맑은 날, 대낮에는 아이스커피로 마시기도 한다.

산미가 강조된 싱글 오리진이나 블렌딩 된 원두로 에스프레소를 추출해 얼음을 넣은 커피는 그 신맛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어서 청량감도 배가된다.

한 모금만 마셔도 갈증이 싹 가시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맑은 날의 낮잠

어린 시절, 엄마는 점심 설거지를 끝낸 뒤 나를 앉고 낮잠을 주무셨다. “엄마랑 같이 자자.”하고 엄마가 나를 끌어안은 뒤 금방 곯아떨어지실 때면, 나는 잠이 오지 않는데도 곤히 자는 엄마를 깨울 수 없어 가만히 누워 천장이나 엄마를 바라보다 이내 잠에 빠져들곤 했다.

엄마와 함께 했던 낮잠의 추억에는 늘 항상 맑은 날씨와, 조금 열어둔 창 사이로 가느다랗게 불어와 피부를 간질이는 부드러운 바람이 있었다. 그 시절엔 잠이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다가도, 막상 잠이 들면 엄마보다 오래 자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엄마랑 시장가자.’하고 깨울 때까지 곤한 잠을 자곤 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낮잠을 거의 자지 않는데, 약속이 없는 주말 대낮에 밀린 빨래를 돌려놓고 기다리다가 잠이 들 때가 있다. 그런 날 살랑-하고 바람이 불어오면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감각이 다시 살아나 꽤 행복한 기분이 든다.

영화 ‘콜미바이유어네임’의 Ost

어린 시절부터 나는 빛과 소리에 예민했다. 나와 한 방을 썼던 언니는 밤새 스탠드 조명을 켜고 두꺼운 판타지 책을 읽는 올빼미형의 사람이었다. 라디오를 듣다가 잠들기를 좋아하는 ‘소리’에 무딘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감은 눈꺼풀 위에도 희미한 빛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잠에 들 수 있었고, 내가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한 언니가 조심스럽게 라디오를 켜면 그 소리에 다시 깨서, 라디오를 끄고 잠에 들었다.

그렇게 빛이나 소리에 민감해서인지, 형광등 불 아래보다는 자연광을 좋아하고, 너무 시끄럽거나 빠른 음악도 좋아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시절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는 피아니스트 이루마나 유키구라모토의 피아노 연주곡 등 뉴에이지 음악을 들었고, 적재나 최유리, 잭존슨 같은 싱어송 라이터의 비교적 잔잔하고 담백한 음악을 듣는 게 좋다. 사회인이 된 후로도 오랜 시간 동안 자주 듣는 음악 중 하나는 영화 콜미바이유어네임의 ost다. 사실 이 ost는 잔잔한 음악뿐 아니라 긴장감이 드는 사운드나 미스터리 한 느낌의 음악도 포함하는데, 대신 영화의 배경이 아름다운 북부 이탈리아의 한적한 시골 풍경이라, 그 여유롭고도 아름다운 장면이 떠올라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가 싫어하는 것 3가지

공포영화

왜 공포영화를 보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귀신이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거나,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장면을 보면 온몸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공포나 스릴러를 보고 나면 끔찍한 장면이 떠올라 무서운 것보다, 당장 너무 놀라고 또 끔찍해서 ‘온몸에 힘을 준 탓’에 금방 에너지가 고갈된다. 대학 시절 내 취향을 몰랐던 남자친구가 예매해 둔 공포영화를 봤던 날, 영화를 다 본 다음 너무 지쳐서 이제 그만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주장이 강한 사람

매사 ‘그럴 수도 있지.’하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주장이 너무 강한 사람을 싫어한다. 강요받는 것도 싫어하고, 강제되는 것도 싫어한다. 조금씩 나이를 먹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변하는 시대를 겪으며 내가 가장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그건 아마 ‘유연함’ 일 것이다.

절대선과 절대악은 없다는 것. 완벽히 옳은 사람도 완벽히 잘못된 사람도 없다는 것.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논리를 가지고, 누구나 그 사람의 논리에 서면 ‘그럴 수 있다.’하고 생각할 부분이 아주 조금이라도 있게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동체’ 내에서 살아가야 하니, 서로 합의한 규칙은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이분법적으로 사고하거나 ‘내 말이 옳다’라고 강하게 확신하는 사람과는 어울리고 싶지 않다.


춥고 흐린 날

날씨를 많이 탄다. 해가 길고 밝으면 기분도 절로 밝아지고, 흐린 날은 기본적으로 몸부터 무겁게 느껴진다. 지금 사는 집은 ‘북향’이다. 이 집을 처음 얻었을 때, 멋모르고 ‘향’과 ‘넓이’를 바꾸는 실수를 했다. 그게 두고두고 후회된다. 부동산 아줌마는 남향에 살면서도 컴컴하게 커튼을 치고 사는 사람도 많고, 직장인은 어차피 아침에 출근해서 밤에 들어오니 넓은 방이 좋지 않겠냐고 지금 사는 집을 소개했었다. 그 당시는 넓은 공간에서 요가 수련을 하고 싶다는 이유로 작고 비싼 남향의 집이 아니라, 넓지만 정북의 방향으로 창이 난 지금의 집을 선택했다.

하지만 정북향의 집은 밖이 따뜻해도 실내는 동빙고마냥 서늘하고 밝고 강렬한 빛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늘 조금은 어둡다. 형광불빛을 싫어해서 작은 스탠드 조명만 켜 둘 때도 많다. 구름이 잔뜩 낀 춥고 흐린 날에는 집이 동굴같이 느껴져 더욱 기운이 쭉 빠진다. 나는 해바라기과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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