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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생기면 이렇게 묻는다

스물한 번째 쓰기

by 박고래

2018년~2019년 초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했다. 홀로 떠난 그 길에서 여러 가지를 배웠지만, 그중에서도 선명히 남아 내 삶의 지침이 되어주는 말이 있다. 70대 여행자, 단 할아버지가 해 준 말로 ‘죽을 때까지 문제는 생길 것’이란 사실이었다.


“죽기 전까지 삶에는 끊임없는 고민과 문제들이 찾아와.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게도 늘 문제들이 시시각각 찾아왔어. 그것이 멈추는 순간은 우리가 죽는 순간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민을 멈춰서는 안 돼. 너는 앞으로 일어날 문제들을 미리 알지 못할 것이고, 미리 대비할 수도 없어. 그래도 네게 닥친 문제들을 회피하지 말고, 마주한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지 고민해. 그럼 문제는 늘 찾아오겠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거야.”
<배움의 시간을 걷는다> p.76


그 길에 오르기 전까지 나는, 인생에는 ‘고민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젊을 때, 최선을 다해 고민하고 해답을 찾으려 노력한 사람에게는 ‘고민이 사라진 안락하고도 평화로운 시간’도 빨리 찾아올 것이라 믿었다.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그깟 거 에너지가 철철 넘칠 때 다 해치워버리겠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치열하게 고민하며 20대를 보냈음에도 30대에 접어들 무렵 고민이 전혀 가벼워진 것 같지 않았다. 나이를 한 살 또 한 살 먹어갈수록 그저 그 시기에 맞는 새로운 고민과 문제들이 밀려왔다.


‘20대를 꽤 치열하게 보냈는데 왜 삶의 무게도, 고민의 총량도… 가벼워지지 않았지?! 지겹다…’ 그런 생각을 할 무렵 단을 만났었다. 나는 질문했다. 70대쯤 되면 ‘명상의 길’이라는 산티아고까지 와서 생각할 만큼 큰 고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당신은 어떤 고민을 안고 이 길에 서 있냐고 말이다. 그런 내게 단은 ‘살아있는 한 시시각각 문제가 찾아올 거라고.’ 말해줬다.


그의 말을 들은 뒤, 내게는 아이러니하게도 문제가 계속된다는 좌절감 보단 어떤 해방감이 찾아왔다. ‘언젠가 사라지는 게 아니고, 그냥 계속 찾아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순간이었던 것 같다. ‘생’을 전제로 한다면, ’ 해결해야 할 문제’는 늘 생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제야 납득할 수 있었다.


요즘은 문제가 생기면 이렇게 생각한다.


‘아, 또 문제가 생겼군. 어떻게 해야 잘 해결할 수 있지?’


때로는 작은 문제가, 때로는 큰 문제가, 때로는 하나의 일이, 때로는 여러 가지 일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어떤 때는 가만히 있어도, 내가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가 생긴다. 그럴 때 ‘아, 언제까지!’하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너무 괴롭다. 어차피 해결할 사람이 나 밖에 없다면-근데 당연히, 내 인생에 대한 문제는 해결할 사람이 나 자신 밖에 없다.- ‘왜 내게 이런 일이…’하는 생각보다는, ‘이미 일은 일어났다. 그래서 어떻게 해결하지?’하고 생각하는 게 보다 생산적이다.


물론, 나는 여전히 고요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꿈꾼다. (제발 아무 문제도 없길…!!)하지만, 늘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게 기본 값이라면, 문제가 생길 때는 ‘왜’ 대신 ‘어떻게’를 묻기를 제안한다. 경험상, 그게 훨씬 더 마음고생을 덜하고, 빠르게 문제에서 벗어나는 질문이 되어줄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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