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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퍼스트러브 하츠코어> 리뷰

서른 번째 쓰기

by 박고래

지난 목요일 밤을 시작으로 넷플릭스 드라마인 <<퍼스트 러브 하츠코어>>를 시청했다.


20대 때는 <<냉정과 열정사이>>같은 로맨스 드라마 장르의 영화도 꽤 좋아했었는데, 언젠가부터 흥미가 조금 식어있었다. 어쩌면 이런저런 관계의 경험이 쌓이면서, ‘영화 속 사랑은 진짜와 다르니까!’하는 마음에 멀리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난 목요일 밤은 달랐다.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꽤 피로감이 컸는데 다음 날이 휴일이라 그런지,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넷플릭스를 뒤적거리다가, 왠지 잔잔할 것 같아 별생각 없이 이 드라마의 썸네일을 눌렀다.


1편당 약 50분 분량으로 총 9부작의 드라마였다. 사실 이걸 내가 끝까지 보게 될까? 의문이었는데 역시나 시작을 하면 그게 재미있든 없든 간에 끝내는 성미 탓인지, 결국은 드라마를 다 보고 말았다. 그것도 꽤나 재미있게! 그래서 제목을 보고 이 드라마의 후기가 궁금해 들어온 분이라면, 드라마를 보시길 권한다.


이 드라마는 일본 가수인 우타다 히카루의 히트곡인 <first love>와 <하츠코이>라는 곡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한다.(둘 다 ‘첫사랑’이라는 뜻으로 영어, 일본어로 된 제목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두 남녀의 첫사랑이 예기치 않은 사고로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시간이 흐른 휘 두 사람이 재회한다는 내용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읭 그런 뻔한 러브스토리를 추천한다고?’하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잔잔한 러브스토리를 주제로 하는 영화는, 사실 큰 맥락이 아니라 그 큰 흐름을 어떻게 작은 사건들이 메워가는지, 그리고 주인공들은 자신들 앞에 나타난 사랑의 기회와 시련을 어떤 식으로 마주하는지를 보는데 포인트를 맞춰야 한다.


이 드라마의 백미는 두 남녀가 첫사랑에 실패하고, 다소 ‘실패’에 가깝다고 평가될만한 삶의 시점에 재회해 서로를 다시 알아가는 과정을 그린 부분이다. 단지 사랑이야기라기보다는, 인생의 좌절을 어떻게 담담하게 딛고 일어나는지? 어떻게 현재의 삶을 수용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변화를 선택하는지? 같은 질문들을 떠올려 볼 수 있고, 또 각 인물들의 선택을 따라가며 나도 변화를 맞는 등장인물들처럼 ‘뭔가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드라마의 가장 마지막은 두 남녀가 돌고 돌아 재회해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 마지막 부분은 도쿄에 살던 여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을 찾아 멀리 노르웨이로 찾아가 그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장면인데, 이 부분을 보며 이런 의문이 들었다.


여주인공은 사랑하는 이를 찾아 멀리 떠났고, 그 사랑을 선택해 노르웨이에서 남자 주인공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택한다. 물론 그곳에서 새롭게 얻은 직업은, 원래 여주인공이 꿈꾸던 일이니 ‘직업’을 버렸다기보다는 ‘원하는 일을 얻게 된 것’에 가깝다. 하지만 사랑하는 남자와 살기 위해 가족이 았는(아들이나 노모)일본을 떠나 노르웨이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용기는 어디에서 난 걸까?


생각해보니 나는 지금껏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삶’만을 꿈꿔본 적이 거의 없다. 오히려 스스로 인생을 책임지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해나가며, 나 자신을 실현하는 삶을 상상해왔다. 만약 그 과정에서 ‘사랑’이라는 이유로 내가 원하는 삶과 충돌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면, 아마도 나는 그 사랑을 선택하지 않을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삶’이 내 인생보다 더 중요할 수 있을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런 사랑이 진짜 중요한 사람이라면 내 인생 = 그 사람과 함께하는 삶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그 사람에게는 ‘함께’라는 가치가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일테다. 그런 생각을 하며 문득 깨달았다. 예전보다 이런 로맨스 드라마를 덜 보게 된 건, 어쩌면 내가 더 ‘현실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물론 작품 중간중간 ‘마지막 키스는 담배 맛이 났어’ 같은 다소 진부하고 올드한 대사가 거슬리긴 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너무 단단해지고 이성적으로만 사고하는 나 자신을 잠시 흔들어놓고 싶을 때, 이 드라마는 꽤 좋은 자극이 되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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