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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먹고살 돈이 있다면, 일을 할 건가요

서른한 번째 쓰기

by 박고래

“로또 당첨이 되어서, 평생 먹고살 걱정은 없어졌다고 쳐봅시다. 그럼 계속 일(=노동으로 인한 보상 수령)을 할 건가요?”


토론 모임에 갔다가 받은 질문이다. 모임에 10명 이상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중 과반수 이상이

돈이 아주 많아져도, 일은 계속할 거라고 답했다. 나도 일을 하는 쪽으로 손들었다.


‘돈 걱정이 없어도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할까?’


나는 내 일을 좋아한다. 하지만 ‘지금 하는 일’이라고 한정하니,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하는 일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내가 ‘생계+자아실현’의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둘 사이에서 밸런스를 맞추며 선택한 일이라, 오롯한 ‘재미’나 ‘보람’만 느끼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생계유지와 의미라는 측면을 위해 견뎌낸 순간이 보람찬 순간만큼이나 많았다. 따라서 견뎌야 하는 고통은 덜고 일에서 얻는 의미의 요소를 유지시키려면, 같은 일이라도 지금보다는 더 느슨하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와는 달리, 지금 하는 일 외에 또 무슨 일을 하고 싶냐? 물으면 그때는 ‘그림 그리고, 글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대답하고 싶었다.

‘그림’으로 말하자면, 지금의 나는 회화 전시를 보는 것을 즐기지만, 화가처럼 그림을 잘 그리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배워서라도 ‘그리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싶다. 그리고 ‘글 쓰는 작가’의 경우, 글은 내가 늘 어슬렁거리는 분야로써, 조금 더 집중해서 배우고 연습해 ‘생각을 글로 잘 표현해 내는 역량’을 기르고 싶다. 그렇게 어느 정도 내가 가진 감성이나 생각을 그림이나 글로써 표현해 내면, 그걸로 사람들과 소통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또 다른 분이 이렇게 물었다.


부자가 된 뒤에는 사실 즐거움을 일에서 찾지 않아도 되는데, 하고 싶은 취미활동 하면서

그냥 놀명 쉬명 살아도 되지 않냐? 급여가 필요하지 않는데 왜 조직에서 일하고 싶냐? 하고 말이다. 그 말을 듣자 나는 ‘일터’의 역할은 단순히 ‘일하는 장소’외에도 다른 의미 있다는 걸 깨달았다.


먼저 ‘보상’을 대가로 주는 일은, 내가 자기 다짐으로는 결코 갈 수 없는 지점까지 나를 밀어붙여 내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돕는다. 나는 내가 기본적으로는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나를 일으켜

매일 뭔가를 하게 하는 것은 ‘하게 만드는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었다. 예를 들자면, 운동이 필요하면 PT를 끊거나 등산이 하고 싶으면 함께 할 사람을 모아 약속을 만드는 것 같은 방식이다. 이렇게 ‘나의 하고자함’에 ‘책임’이라는 양념을 조금만 더 치면, 나만의 의지로는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내는데 도움이 된다.


‘나를 밀어주는 힘’이 있음과 동시에 고려할 긍정요소는 ‘커뮤니티’다. 함께하면 힘든 일도 나눠할 수 있고,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이 고생을 나 혼자만 하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점을 확인하며 위안을 얻을 수도 있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서로에게 응원해주는 존재가 바로 동료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나는

재택근무 100%인 회사보다는, 현실 세계에서 동료를 만나고, 의견을 나누며 일하는 것이 좋다.


여기까지 쓰다보니, 내가 ‘사람을 만나 교류하고,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 매일 지옥철을 탔다는 사실을,

내가 수립한 전략으로 시장이 진짜 반응하는가? 를 실험하기 위해 매일같이 애태웠다는 사실을 보다 분명히 깨닫게 된다.

물론 ‘지옥철’이나 ‘과도한 스트레스’는 언젠가 꼭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일’은 생존을 위한 필요악 이라기보다는 내가 보다 세상을 즐겁게 살 수 있는 도구 중 하나로 인식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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