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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오래 집에 머물 수 있나요

서른 여섯 번째 쓰기

by 박고래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얼마나 있을 수 있어요?


독서 토론모임에서 나를 소개할 때 “저는 스스로 내향성이 강하다고 느끼는데, 다들 ‘너는 확신의 외향형’이라고 하더라고요.”하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한 분이 대뜸 저 질문을 했다.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 저는 하루에도 꼭 한 번은 집 밖에 나가요.

큰 볼일이 없다면 음식물 쓰레기라도 버리고, 그게 아니면 집 앞 카페나 편의점이라도 가는 편이에요.”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 그러시면 E(Extraversion) 성향이 맞으시네요.’하고 진단(?) 해 주셨다.


가장 최근 ISTJ의 성향을 가진 동료 A와 B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져봤다. 그랬더니 한 분은 30일 이상 외출 없이 집에 머물 수 있다고 했고, 다른 한 분도 적어도 일주일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매일 한 번 이상은 외출해야 하는 나를 신기해했다. (물론 내 기준으로는 집에서 7~30일씩이나 머물 수 있는 게 놀랍지만!)

A가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자신은 맛집 가기, 전시보기, 친구 만나기 등 에너지를 써서 외출을 하려면, 가치 있는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시간 낭비가 될 수 있으니 꼭 사전에 계획을 한다고 말이다.


나도 ‘계획’이라는 걸 대충 하긴 하는데, 일단 ‘나가고 보는 편’에 가깝다. ‘A카페가 좋다던데!’ 또는 ‘공원 방향으로 좀 걸어볼까?’ 정도로 러프하게 생각한 뒤 집을 나선다. 그 후엔 목표로 한 카페가 별로였거나, 공원까지 길게 걷지 못해도 거기에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


기대하고 찾아간 카페가 별로였다면, ‘언젠가 한 번은 방문할 카페였는데, 이렇게 확인했으니 된 것’이라며 궁금했던 사실을 확인한 걸로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생각한다. 공원에 가다가 힘들어서 다시 집에 되돌아올 때도 있는데, 전혀 걷지 않은 것보다는 계획 대비 절반이라도 운동을 한 셈이니 잘 나갔다 왔다고 위안을 삼는다.


오늘은 약속이 없는 일요일이었다. 오전에는 간단히 요가를 다녀왔고, 오후에는 날이 좋아 어디라도 다녀오고 싶었다.

문득 커피를 좋아하시는 지인이 추천해 주신 카페가 생각나 점심을 먹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셨다.

목표는 ‘종료 5가의 카페에 가서 커피 마시기’였고, 그 외에는 카페에서 읽을 책 한 권을 챙겼다. 카페는 네이버 지도로 집에서 50분 걸리는 거리에 있었는데

평소 잘 찾지 않는 동네에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설렜다.


그렇게 왕복 2시간 거리의 카페에 가서 여러 가지 원두 중 마음에 쏙 드는 설명의 원두를 골랐다.

그리고 풍경이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아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마시는데!

커피 맛도 취향에 딱 맞고! 녹음과 낡은 기와가 보이는 눈앞의 풍경도 마음에 들어서 꽤 큰 만족감이 찾아왔다.


이렇게 뭔가 큰 목표 없이 집 밖으로 쉽게 나가는 경험을 쌓다 보면, ‘나가면 뭐라도 좋은 경험을 할 거야!’라는 기대를 하게 되어

점점 더 엉덩이가 가벼워지는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외출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집을 나선다.


때로는 이 집값 비싼 서울에 집세를 따박 따박 내며 사는데, 외출이 습관이 되어버린 탓에 온전히 내 공간인 집을 너무 괄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사는 곳을 누비며 ‘서울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은 꽤 마음에 든다.


사실 최근엔 괜히 할 일이 없는데도 커피 한 잔에 5~6천원씩 하는 동네 카페에 가다보니, 가성비가 좋지 않다며- 나의 이 외출벽(?)을 원망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찬찬히 앉아 생각해 보니 외출을 잘하는 성향은 또 그것대로 좋은 것 같다. 기왕 이런 성향으로 태어난 거, 최대한 세상을 누비며 살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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