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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마케터는 정말 시대에 뒤떨어졌나

서른일곱 번째 쓰기

by 박고래

“아니 요즘 누가 책으로 마케팅을 배워요~?”


신입사원 면접을 보던 날. 마지막 순서로 지원자에게 질문이 있는지 물었다. 잔뜩 뜸을 들이던 지원자는 ‘어디서 마케팅을 배워야 하나요?’라고 물었다.


도움이 되는 답을 주고 싶었던 나는, 본인 특성에 맞춰 다양한 경로로 공부를 하면 된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덧붙인 건, 체계적으로 기본적인 지식을 쌓고 싶다면 ‘고루하지만 원전이라 불리는 책을 한두 권 정도는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라는 말이었다. 유튜브 동영상을 통한 강의나, 마케팅 레퍼런스를 모아놓은 짧은 아티클도 좋고, 올영 같은 유통처에서 여러 사례를 봐도 좋은데, 그래도 내 경우는 좋은 책이 기본기를 쌓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이다.


옆에 앉은 팀장님은 면접 봤던 지원자가 나가자, 웃으면서 ‘요즘 주니어들한테 누가 마케팅 책을 읽으면서 공부하라고 해요~?’하고 장난치듯 말하셨다. 하지만 나는 4P(제품, 가격, 유통, 프로모션)의 개념이나, 포지셔닝 같은 말이 유행처럼 쓰이지만 그 개념을 정확하게 알고 활용하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고 대꾸했다. 조각조각의 레퍼런스를 통해 배우기도 하지만, 일단 소비자, 타깃, 자사의 경쟁력이나 시장에서의 위치 등 기본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을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말이다.


며칠 뒤엔 이런 일도 있었다. 영상 광고 기획안에 대해 논의하는 미팅 자리였다. 나는 강렬한 CM송 버전보다는, 공감할 수 있는 인상적인 스토리의 광고를 원했다. 5초 정도 잘라 써도 활용도가 높을 것 같고, 그걸 다시 이어 붙인 버전도 각인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선호했던 공감형 기획안의 장점을 이리저리 설명할 때였다.


그 자리에 있던 동료 한 분이 ‘근데 책 많이 읽는 사람이랑 달리, 요즘 사람들은 빠르잖아요. 스토리가 있는 B안은 지루하지 않을까?’하고 나=책 읽는 사람=트렌드 캐치를 못하는 사람 같은 구도를 엮어 내가 추천한 안에 대해 의문을 품는 말을 하셨다. 나는 내가 말한 스토리적 측면, 공감이나 웃음의 포인트, 활용도에 대해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선택한 안’이기에 내 선택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말을 듣는다는 점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으로는, ‘책을 좋아하는 나는… 요즘의 트렌드와 멀어지고 있나?’하는 생각과 함께 불안한 마음도 잠시 스쳐 지나갔다.


그렇다. 요즘의 나는 ‘책을 좋아한다’는 이미지 때문에 은근한 부정적 평가를 받는다. ‘책을 좋아하지만’ 실상은 영상을 훨씬 더 많이 소비하는데(이 편이 보다 쉬우니까), 그럼에도 ‘책을 읽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마치 트렌드에 뒤처진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변인에게 주는 것 같다. (실제 밈이나 유행어에는 늘 20대 신입 직원들에 뒤처지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마케팅 일을 하다 보면, 참신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정말 필요한 순간이 많다. 경쟁은 치열하고, 어느 한 브랜드가 잘 되면 비슷한 콘셉트의 제품이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모방되어 트렌드를 일반화의 범주로 변모시킨다. 따라서 남들이 하지 못하는 생각, 또 한편으로는 2030의 주 타깃들이 어떤 내용과 형식의 콘텐츠에 빠져드는지를 잘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번뜩이는 아이디어만큼 중요한 것이 나는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우리가 가고 싶은 위치에 대해 생각하고(포지셔닝), 어떤 경로를 통해 소비자를 대면할 것인가 등- 논리적인 마케팅 캠페인의 뼈대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집을 지을 때, 눈에 보이는 외관을 어떤 컬러와 모양으로 만들까? 고민하는 부분이 트렌드에 가깝다면 100년 갈 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단단한 골조를 세우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팀을 보다 동물적으로 시대와 트렌드를 읽을 수 있지만, 체계적으로 생각하고 단단하게 논리를 전개할 수 없는 주니어 연차의 팀원과 보다 능숙하게 전략을 짤 수 있지만, ‘헐!’하고 단말마의 감탄을 내지를만한 트렌디한 카피를 뽑기엔 좀 뒤처진 고연차들이(보통 이렇다...) 잘 어울려 소통할 수 있는 구성원들로 고르게 배치하려고 애쓴다.


어떤 조직에서는 ‘읽는 사람으로서의 나’가 박수받았고, 지금의 조직에서는 활자를 좋아하는 내 성향에 대해 의심이나 의문을 제기하는 동료를 때때로 만난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저절로 마케터로서의 내 경쟁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영상매체가 아무리 중요해진 시대라도, 활자를 통해 얻는 배움과, 학습방법이 있을진대- 왜 그런 흑백의 시선으로 ‘책’이라는 매개체를 한 물 간 무언가로 대하는 건지 원.


난 이런 아쉬움을 가지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내 생각이 100% 맞을 수 없고, '책을 좋아하는 마케터'의 입장을 옹호한 주장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말인데요,

책을 좋아하는 마케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삼자의 시선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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