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아홉 번째
야근을 하고 회사 문을 닫고 나온 시각은 10시 40분이었다. 회사의 야근 택시 이용 규정은 밤 11시 이후 퇴근이고,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늦은 밤 택시 타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회사 근처 지하철역은 걸어서 5분. 하지만 나는 일부러 선정릉을 돌아 선릉역까지 15분쯤을 걷는다.!
선정릉은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어 있고, 조선의 왕과 왕후의 무덤이 함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경이 아주 훌륭하다. 선정릉 담벼락에 바짝 붙어 걸으면 아침에는 나무 사이로 날아온 새들의 경쾌한 울음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맑게 개인 날 밤이면 눈에 거슬릴 것 하나 없이 홀로 빛나는 달을 볼 수 있다.
늦은 시각까지 야근을 한 날이면 나는 내게 더 잘해주려고 노력한다. 고생했다! 스스로 격려해주는 것이다. 격려의 한 방법에는 좋아하는 길을 따라 걸으며 한적함을 만끽하는 일이 포함된다. 그래서 오늘도 담벼락을 따라 걸어 지하철 역으로 갔다.
한여름의 밤이라 심야러닝을 즐기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그 모습을 보니, 늦게 까지 일했다는 사실이 크게 서글프지는 않았다. 나는 몸에 해로운 ‘오래 앉아 있기’를 한 것이나, 늦게까지 뭔가를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에서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겉다가 나무가 울창한 구간에서 하늘을 바라보는데, 그 풍경이 서울 한복판이라기엔 좀 낯설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배우고 싶거나 경험하고 싶은게 있는데 소속된 회사에서 할 수 없으면, 이직을 통해 커리어를 성장시켰다. 그래서 꽤 여러 동네에서 회사를 다녔다. 역삼, 서울역, 논현, 청담, 성수 등.
그 모든 곳에서 ‘야근을 적게 하는 팀원’은 아니었기에 야근 후 고요해진 밤 하늘을 바라볼 기회가 종종 있었다. 대낮이면 북적이던 서울의 이곳 저곳도 밤이면 고요해져서 낮과 밤의 반전과 그 고요함을 느끼는 일이 참 좋았다.
오늘 퇴근길도 그랬다. 고요하고, 한산하고, 여기가 서울 한복판인가? 싶을만큼 차분하고. 그 와중에 살에 닿으면 기분 좋은 정도의 미세한 바람이 불어와 기분을 더 풀어놓았다.
이 시간까지 일을 했노라고, 요즘은 너무 해내야 할 일이 많다고. 우는 소리 해봤자 소용은 없디. 어차피 내가 다 해내야 하는 일이니까. 그러니 어쩌겠는가. 낮과는 또 다른 서울 밤하늘의 정취를 위안삼아 나의 스위트 홈으로 귀가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