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두 번째 쓰기
요즘 드문드문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예전에는 내 실무만 잘하면 됐는데, 지금은 '잘한다'는 기준조차 애매하다. 이게 지금 시기의 내 커리어에 대한 고민인 것 같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어제 밤 더위에 잠을 설쳐서 7시 조금 넘어 일어났다. 명상을 해야 했는데 늦게 일어난 탓에 귀찮아서 그냥 앉아서 10번 숨 쉬기로 대체했다.
출근 준비하기엔 넉넉하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서두르기 싫어서 쿠팡 새벽배송으로 온 플레인 요거트를 그릭 요거트 제조기에 부어 냉장고에 넣는 만용을 부렸다. 덕분에 회사 가는 길은 정신이 없었다.
이렇게 분주했던 시간들은 금세 휘발해버린다. 이 모든것이 오늘 아침, 그러니까 겨우 몇 시간 전 일인데도 선명하지 않다.
회사에 도착해서는 어제 들었던 AI 강의 때문에 마음이 들떠 있었다. 4시간 동안 빡세게 배웠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오랜만에 '배움의 의욕'이 일었다. '시간이 걸려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평소 출근 후 업무를 시작하는 루틴과 달리 바로 ChatGPT, 제미나이, 클로드를 열고 즐겨찾기해뒀다. 뭐라도 해야 앞으로 하나둘 배워나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예전의 나는 실무를 최소 50% 이상은 해야하는 실무형 팀장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협업사와 4명의 마케팅 팀원이 각각 프로젝트를 가지고 있고, 나는 그 모든 것들을 챙기며 각 팀원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데 필요한 피드백, 상의, 조율을 한다.
월요일 오전 정기 매출 미팅 보고서를 준비하고, 새로운 해외영업팀장과의 점심, 두세 번의 미팅, 외부 업체 캠페인 파일 검토와 피드백... 하루가 그렇게 지나갔다.
그런데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내가 지금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가끔 헷갈린다. 관리자로서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 이렇게 일하면서 나는 과연 성장하고 있는 걸까? 확신이 서지 않는다.
좀 더 안정적으로 확신을 가지고 일하고 싶은데 그러기엔 변수가 많다. 나도 처음 맞닥뜨리는 상황이 많고, 팀원들의 역량도 제각각이다. 늘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기고 그걸 해결하며 하루가 간다.
어떤 날은 연예인들이 긴 무명을 거쳐, 자기에게 맞는 작품을 만나 터닝 포인트를 겪듯, 나도 지금의 시행착오들이 언젠가 의미 있는 경험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10년, 15년 무명으로 지낸 배우가 하나의 드라마로 단숨에 주목받듯이 말이다.
어떤 날은 다르게 생각한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혼란과 시행착오 자체가 이미 성장의 과정이 아닐까.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름의 관리 철학과 방식을 만들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 답은 아마 몇 년 후에나 알게 될 것이다.
실무자에서 관리자가 된다는 건, 확신할 수 있는 답을 도출할 수 있던 세계에서 매일 새로운 문제를 만나는 세계로 이주하는 일 같다. 하지만 이 불확실함 속에서 조금씩 내 방식을 찾아가는 재미도 있다.
아침에 시간이 부족해도 그릭 요거트 만들기를 포기하지 않듯, 혼란한 일상에 내 나름의 스타일로 대응하는 습관같은 것들이 선명하진 않지만 내 나름의 일하는 리듬과 모양을 만들어준다. 그런 식으로 버텨가다 보면, 언젠가는 '아, 이게 내 방식이구나’, ‘이렇게 더 좋은 성과를 내는거구나’ 정답같은 것을 알게되는 순간이 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