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세 번째 쓰기
"팀장님의 피드백이 좋아요."
내가 한 말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는 의미였는데, 바로 돌아온 대답은 피드백에 대한 감사였다. “좀 더 고민해볼게요.” 라는 말이 아닌 “감사”를 먼저 말하는 팀원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확실히 이 소통에 해결할 부분이 있다는 것을.
예쁘지만 고민스러운 팀원
내 팀에는 3년 차 매니저가 있다. 겸손하고 예의 바르고, 배우려는 열의도 넘친다. 처음 봤을 땐 "이 친구와는 잘 맞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주니어 레벨 팀원을 채용할 때 내가 보는 건 단순하다. 팀과 잘 맞을 사람인지, 일에대한 애정과 배우려는 자세가 있는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가능성이 보이면 나머지는 천천히 채워가면 된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다른 팀원들에게는 하지 않던 피드백을 이 친구에게만 자꾸 하게 된다. 면담도 많아지고,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데도 개선이 더디다.
그래서 요즘 내 입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 있다.
"열심히 하는 건 정말 좋은 태도인데, 더 중요한 건 방향이야."
좋은 의도, 아쉬운 결과
며칠 전 또 다른 피드백 면담을 마치고 곰곰 생각해보니, 이 팀원이 어려워하는 패턴이 보였다.
첫 번째는 자기 역량에 대한 객관적 인식 부족이다. 하고자 하는 열의는 정말 높은데, 본인 '케파'를 모른 채 시종일관 YES를 외친다. 그러다 보니 업무가 지연되고, 퀄리티가 아쉬워지고, 때로는 중요한 프로젝트에도 이슈가 생긴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지만 결과는 팀에 안좋은 결과값을 가져다 준다.
두 번째는 맥락 파악력이다. 피드백을 받아들이긴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가'의 본질을 잡지 못한다.
"저도 이런 피드백을 거듭 하고 싶지 않아요."
이렇게 말했을 때 기대했던 답은 "같은 피드백 받지 않도록 더 개선해보겠습니다"였다. 하지만 돌아온 말은 "팀장님의 피드백이 정말 좋아요"였다.
그 순간 나는 당황했다. 상황에 맞는 대답을 하지 못하는 이런 패턴이, 업무에서도 반복되는 것 같았다.
말은 생각의 거울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발표할 때다. 말이 길어진다. 여기저기 흩어진다. 결론에 힘이 없다.
"정말 정리가 안 된 건가?"
생각해보니, 생각 자체가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기 생각을 구조화해본 경험이 적고, 모든 정보를 동등하게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핵심을 선별하지 못하고,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한다.
지난주 면담에서 물어봤다.
"이 발표에서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뭐예요?"
"음… 그게 그러니까… 제가 생각하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핵심은 하나여야 하는데, 그걸 고르지 못했다. 마치 뷔페에서 접시에 모든 음식을 다 담으려는 사람처럼.
함께 성장하는 방법 찾기
그럼에도 이 친구가 성장할 거라는 믿음은 있다. 그저 속도가 더딜 뿐. 나도 처음부터 잘했던 건 아니니까, 피드백 방식을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있다.
"지금 말한 내용을 잠깐 멈춰서, 생각 정리한 다음 말해보실래요?"
"핵심부터 말하고, 그다음에 근거를 말해볼래요?"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뭐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건, 방향이 있는 노력이라는 것. 나도 신입 때는 이런 말이 와닿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열심'만 가지고서는 부족하다는 것을. '방향'을 정하고, 그 방향으로 정렬하며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목적지 없이 달리는 말처럼, 아무리 빨리 달려도 잘못된 곳에 도착한다면 그 팀원은 또 얼마나 힘이 빠질까. 그런 생각을 하니 답답하면서도 안타까웠다. 이런 고민을 하는 나도, 사실 매일 실수를 통한 깨달음과 성장을 경험한다. 함께 배워가며 성장하는 것, 그게 ‘매출’ 같은 정량적 성과 외, 우리가 함께 쫒아야 하는 정성적 추구의 지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