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네 번째 쓰기
나를 가까이서 본 지인들에게 여러 번 들었던 말이었다. 나는 1년에 손에 꼽힐 만큼만 꿈을 꾸고(또는 기억하고), 한 번 잠들면 잘 깨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잠'에 한해서는 거의 30년 넘게 큰 고민 없이 살아왔다. 그런 내게도 '불면증'이라는 고민이 찾아왔다.
일주일 정도의 단기 불면은 취업 준비 기간이나, 회사에서 압박스러운 프로젝트로 집중적인 고민이 필요할 때 잠깐씩 겪기는 했지만, 이번 불면은 장기로 이어지고 있었다.
패턴은 이런 식이었다.
회사 일을 마치면 피곤해 파김치가 된 느낌이 들었다. 요가를 가거나, 운동이 없는 날 집에 돌아오면 털썩 누워 휴대폰으로 숏폼 영상을 봤다. 그러다가 11시쯤이 되면 겨우겨우 씻고 잠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문제는 하루종일 에너지가 다 소진되어 파김치가 되었다고 느껴도, 잠자리에만 누우면 잠이 달아나는 것이었다. 심지어 집에 돌아와서 깜빡 잠에 빠져들었다가 다시 깨어난 날에도, 씻고 잠을 청하려면 정신이 또렷해졌다.
되도록 눈을 감고 잠을 기다리려 노력했지만, 한 시간이 흐르고 두 시간이 흘러도 잠들지 못하면 머리맡의 휴대폰으로 쉽게 손이 갔고, 그렇게 짧은 영상들과 함께 아침을 맞이하기도 했다. 토요일 휴식을 잘 취하고 토요일에서 일요일 밤으로 넘어가는 밤에 숙면을 잘 취해도,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밤이면 다시 주간의 불면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못 자는 밤이 지속되어서일까? 점점 낮에 소화도 안 되고, 심지어 저녁에 가벼운 음식을 먹어도 체해서 그 때문에 잠을 못 이루기도 했다. 새벽 두 시쯤 깨어나 소화제를 먹고 다섯 시쯤 다시 잠에 들어 두 시간 남짓 자다가 허겁지겁 출근 준비를 해야 하는 날도 많았다. 불면과 식체의 연결고리는 저절로 삶에 여러 가지 악순환을 가져왔다. 집중력이 무너지고 예민도도 높아졌다. 이런 상태가 3개월쯤 지속되자 '변화'가 절실함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 내가 한 것은 '정희원의 저속노화' 유튜브 채널을 찾아본 것이다. 그게 뭐든 건강에 대한 지식을 찾아보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다음은 정희원 교수의 책을 찾아봤다. 그러면서 유튜브 알고리즘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전문가들의 '불면증'에 대한 콘텐츠도 함께 보게 되었다.
영상을 보며 나는 주간의 스트레스와 업무로 인한 긴장, 과도한 야근 등으로 인해 깨진 생활 리듬으로 늦은 시각에 먹거나, 밤에 과각성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런 시간이 누적되자 '만성 불면'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하나둘, '왜'와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의 지식을 축적하던 어느 날, 나는 내 침실 머리맡에 놓인 휴대폰과 아이패드, 블루투스 스피커 충전기를 모두 뽑아 현관 입구에 놓인 선반에 옮겨 두었다.
낮에 먹던 좋지 않은 음식도 바꾸고자, 다시 건강한 식단 위주의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너무 늦은 시각까지 일하지 않고, 만약 주중의 일이 너무 많았다면 토요일 하루는 그냥 '쉬는 날'로 정하고, 그 어떤 인풋 없이 뒹굴거려도 죄책감이나 조급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마음을 컨트롤하려 노력했다.
덕분일까? 한 일주일 전부터는 다시 부드럽게 잠드는 일상이 찾아왔다. 제대로 된 수면을 되찾기까지 여러 가지 테스트를 해봤지만, 이번에 한 일 중에 가장 유효한 것은 다음과 같았다. 집에 들어서면 바로 휴대폰을 문 앞 충전기에 꽂는 일. 잠자리에 절대로 휴대폰을 가지고 들어가지 않는 일. 잠이 안 오면 어둡게 조명을 켜고 잠이 올 때까지 책을 읽는 일.
매우 신기했던 것은 '책을 읽는 일'도 휴대폰 보기와 마찬가지로 정보를 뇌에 주입하는 일인데, 책을 읽으면 예민하게 돋는 느낌이 아니라 점차 차분해지는 기분이 든다는 사실이었다. 책을 읽다 알게 된 것이지만, 책을 통해 정보를 얻는 건 숏폼을 볼 때 치솟는 쾌락의 도파민과 달리, 천천히 도파민을 대뇌피질에 공급해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습관을 고치려면 '환경'을 바꾸라는 그 당연한 말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했던 최근 몇 달을 떠올려보며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높은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문제 점검, 정의'를 통해 '해결책'을 하나둘 천천히 적용시켜보며 테스트할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멈춰 있지 않고 뭐라도 방법을 찾아보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다시 '잠'을 되찾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숙면하는 사람이 되려면 지금의 습관을 일상에 잘 정착시켜야 하겠지만, 어쩐지 같은 불면의 고민을 가진 분들이 많을 것 같아 최근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다!
AI며, 경쟁사며… 몸도 마음도 쫓기듯 바쁘게 살아가야 하는 시대지만, 그럴수록 몸과 마음의 챙김은 중요하니 말이다. 다들 힘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