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배진 Mar 19. 2021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를 읽고

"대표님, 저는 그 일을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하지 않겠다'는 선택의 말을 뱉고 싶은 순간이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원치 않는 브랜드를 맡게 되거나, 싫어하는 사람과 일을 하게 되는 등 스스로는 절대 하지 않을 일을 타의에 의해 하게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어쩌랴, 나는 나의 시간과 노동을 '돈'과 바꾸기로 했으니, 피치못할 상황이 아니고서야 조직이 바라는 바를 따를 수 밖에.


그런데 이 책에는 내키지 않으면 하지 않는 편을 택하는 직장인이 등장한다. 그는 법률 문서를 필사하는 필경사로, 이름은 바틀비다. 바틀비를 고용한 변호사는 바틀비를 '창백하리만치 말쑥하고, 가련하리만치 점잖고, 구제불능으로 쓸쓸한 모습!'이라고 묘사하는데, 이 희끄무레한 남자는 박력남녀가 뱉을 것만 같은 말,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책의 화자인 변호사의 사무실에 취직한 바틀비는 정말 미스테리한 사람이다. 취업한 뒤 얼마간은 필사일을 하지만, 어느 날부터 바틀비는 모든 것을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일을 하지 않는 편을 선택하고

해고 당하지 않는 편을 선택하고

사무실에서 떠나지 않는 편을 선택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는 편을 선택하며

살아가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재미있는 것은 바틀비의 '선택하지 않음'에 굴복하는 사람들의 태도다. 바틀비를 고용한 변호사는 자기의 사무실에서 노숙하며, 아무일도 하지 않는 바틀비를 해고시키고, 내쫒고자 하지만 창백한 바틀비는 끝내 모든 것을 '하지 않는 편'을 '택'함으로써 변호사가 바틀비를 피해 사무실을 옮기고, 그를 안쓰럽고 불쌍하게 여기도록 만든다. 게다가, 새로 이사온 사람들 역시, 사무실 한 켠에서 떠나지 않는 편을 선택한 바틀비 때문에 손님들에게 신뢰를 잃고, 불편한 일을 겪는다.


이쯤 되니 나는 궁금해 졌다. '하지 않는 편을 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하지 않겠다'는 말과 '하지 않는 편을 택한다'는 표현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나는 늘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는데 '하지 않는 편을 택하는 일은 어떤 일일까?'등등 바틀비의 행동과 관련한 질문들이 떠올랐다.


무엇이든 해서 자기를 '가치있는 사람'으로 만들고, 그 가치를 꾸준히 증명해 내야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우리 사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을 택한다면 그 사람은 어떤 결과를 맞게 되는걸까?


실제 이 소설에서 바틀비는 어떤 경제적 활동도 하지 않고, 타인의 공간을 비워주는 일도 택하지 않아 감옥에 가게 되며, 결국엔 '먹지 않는 편'을 택해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다면 작가는 '하지 않는 편을 택하는 일'의 위험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종국엔 그게 무엇이든 '하는 편'을 택하는 운명을 타고 난 인간들의 숙명을 반대되는 인간상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사실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알게된 하나는 나는 '하지 않는 편' 보다는,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먼저 하는 편'을 선택하는 사람이 좋다는 것이다. 밥먹는 메뉴 하나,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지를 선택할 때도 늘 '내가 무엇을 지금 하고 싶은지?'를 고민하고 그 결과에 따라 무언가를 하는 일이 좋다. 택하지 않아도 살면서 무엇이든 해야한다면, 나는 늘 타의해서가 아니라 자의에 의해서 무엇이든 경험하고, 누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회사에서도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다'는 말 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먼저 찾아서 '이 일을 하고 싶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비교하는 습관을 버릴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