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보낼 용기를 읽고
작년 11월, 슬초 브런치 동기 작가님들과 오프라인 모임이 있었다. 그날 한 작가님의 추천으로 "송지영" 작가님을 알게 되었다. <널 보낼 용기>라는 브런치북을 연재 중이신데, 딸을 떠나보낸 이야기를 쓰고 계신다고 했다.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처음으로 그 글을 만났다.
그 글을 읽던 순간이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읽자마자 터져 나오는 눈물에 가방을 뒤져 휴지를 찾던 내 손. 남은 휴지를 다 적셔버린 뒤 점점 가빠지던 숨소리. 조용하다 못해 고독한 기차 안에서 북받치는 울음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더 읽지 못하고 덮어버렸던 날. 부모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자식을 잃은 일을 써낸 작가님 한 줄 한 줄이 내 가슴에 콕콕 박히다 못해 저릿하게 아려왔다.
그 뒤로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얼마 전 한 작가님의 스레드에서 알게 되었다. <널 보낼 용기>가 책으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작가님을 뵌 적도 없거니와 작년 겨울 그 브런치북을 끝까지 읽어내지도 못했지만, 망설임 없이 책을 구매했다. 같은 엄마로서 그저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내가 사는 이 책 한 권이 작가님에게 작은 응원이 되길 바라며.
집으로 책이 도착하던 날, 택배 상자를 열고 표지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뭉게뭉게 구름이 떠 있는 파란 하늘. 어쩌면 딸이 있는 그곳을 닮은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책을 바로 펼치지는 못했다.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 수도꼭지가 틀린 듯 눈물이 쏟아질 게 분명했기에 책을 펼치는 데에는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했다.
며칠 뒤, 아이들이 하교 후 놀이터를 가자며 졸랐다. 나는 그 틈에 용기를 내어 책을 들고 밖을 나섰다. 놀이터 구석 벤치에 앉아 조심스레 책을 펼쳤다. 담담하게 읽어 내려가려 했지만, 첫 장에서 목이 메었다.
영원히 열일곱일 나의 딸에게
눈앞이 금세 흐릿해졌다. 쏟아지는 눈물을 받아내던 소매는 어느새 축축이 젖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용기 내어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갔다. 작가님의 문장을 따라 그 마음속으로 조심스레 걸어 들어갔다.
"사랑으로 키워도, 아이는 떠났다.
우리는 늘 아이 곁에 있었지만, 아이가 기댈 부모가 되지는 못했다.
병을 알게 되었지만 낫게 해주진 못했다."
"나는 어떤 엄마였을까.
아이랑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어야 했다.
공부, 친구, 학교생활 같은 것 말고.
널 위한 줄 알았던 일들이 사실은 날 위한 거였더라."
아이의 마음이 서서히 병들어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멀어질까 두려워 외줄 타기 하듯 버텼을 작가님의 모습이 한눈에 그려져 가슴이 아팠다. 아이의 방문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었을 그 모습이 꼭 가까운 미래의 내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내가 같은 상황이라면…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더 나은 선택이란 게 존재했을까? 그리고 “널 위한 줄 알았던 일들이 사실은 날 위한 거였더라”라는 문장에서 숨기고 싶었던 내 모습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과연 아이에게 온전히 기댈 부모였을까.'
'나는 아이의 ‘힘들다’는 신호를 놓친 적은 없었나.'
'아이를 위한 줄 알고 했던 일들이 실은 나를 위한 적 없었나.'
그 물음에 난 답할 수 없었다. 오롯이 아이를 위한 엄마가 아니었던 순간들이 떠올랐으니까. 남들 보기에 밝고 씩씩한 아이로 보이길 바랐던 마음. 공부 잘하고, 어디 내놓아도 흐트러짐 없는 아이였으면 했던 나의 욕심. 그 마음과 욕심으로 아이를 다그치고 몰아세웠던 순간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결국 엄마인 ‘나’를 위해 아이를 채찍질하고, 그 결과에 흐뭇해하던 내 모습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끼쳤다. 좋은 엄마가 되려 노력했지만, 실은 좋은 엄마처럼 보이고 싶었을 뿐, 난 그저 못난 엄마였다.
마지막 장을 덮고 추천사 문장 하나가 오래 머물렀다.
"이 책을 읽은 누군가가, 잠든 아이를 보며 그저 숨 쉬고 있는 사실만으로 감사하게 되기를"
22년째 청소년 자살률 1위인 대한민국. 남의 일이라 여겼던 일들이 사실은 우리 가까이에, 어쩌면 우리 집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부모가 조금만 더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면… 달라질 수도 있는 순간들이, 아이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는 순간들이 사실 많이 있지만 우린 애써 모른 척 넘겼을지도 모른다.
여린 아이들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아이의 말과 행동에 조금 더 귀 기울이고 아이의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무심히 지나치지 않는 것,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지 않을까? 청소년 자녀를 두고 있는 부모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청소년 자살률 1위라는 가슴 아픈 타이틀이 사라지는 날이 꼭 오길 간절히 바라본다.
내가 이 책을 산 이유는 어쩌면 작가님의 ‘근황’이 궁금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아이를 잃은 그 절망 속에서도, 제발 버티고 살아내셨기를, 남은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꼭 힘을 내고 계셨기를 바랐다.
작년 처음 작가님의 글을 만났을 때는 거센 슬픔의 파도에 허우적대는 듯했다. 1년이 지난 지금은 여전히 아픈 마음을 안고 있지만 다행히도 한 걸음, 한 걸음 용기 내어 바다 밖으로 걸어 나오고 계시는 듯하다. 단단해져 가는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독자로서 마음이 놓인다.
같이 자식을 키우는 엄마로서. 같이 ‘작가’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서. 송지영 작가님을 오래, 깊이, 진심으로 응원하는 한 독자로서. 그분이 평온하시길 마음을 다해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