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나보다 낫다고 느낀 순간

쓰기 싫은 날, 딸이 해준 말.

by 희너지

빈 화면을 마주하고 앉았다.

마감은 이틀 앞으로 다가왔는데, 한 글자도 써 내려가지 못했다. 마음만 급해질 뿐 손가락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이 상황을 어떻게든 모면해 보려 머리를 굴리고 책을 펼쳐봤지만, 끝내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한숨만 길게 새어 나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큰아이가 물었다.


“엄마, 왜 그래?”

“아, 내일모레가 마감인데 한 글자도 못 썼어. 너무 쓰기 싫어.”


아이의 눈빛이 잠시 애처롭게 흔들렸다. 그러다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표정이 달라졌다. 한 번 정리된 생각을 꺼내놓겠다는 사람처럼, 아이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이름으로 낸 책이 세상에 나온다고 생각해 봐. 얼마나 행복하겠어. 그리고 엄마 꿈이 책방 차리는 거라며. 그러려면 엄마가 유명한 작가여야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을까? 그때를 상상하면서 참고 써봐.”


짧은 정적이 흘렀다.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한 기분. 너무 정확한 말이라 반박할 틈도 없었다. 아무리 곱씹어 봐도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더 투덜거리지 못한 채, 노트북 자판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아무 말 대잔치하듯 생각나는 대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분량이라도 채우자는 심정으로.


‘모든 만물이 스승이다’라는 말처럼,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가 부모인지, 아이가 어른인지 헷갈리는 순간들이 있다. 엄마로 산 13년 동안 그런 순간은 여러 번 있었지만, 오늘도 분명 그중 하나였다. 어른이라고 늘 이성적이고 지혜로울 수는 없다. 미숙하고 부족한 순간들도 많다. 아이들은 그런 순간을 정확히 집어내, 스승처럼 말을 건넨다. 오늘 역시 딸에게 한 수 배운 날이었다.


그리고 문득 미안해지기도 했다. 딸이 공부하기 싫다며 한숨 쉴 때마다 나는 “어차피 해야 할 거면 그냥 해”라고 말해왔다. 힘들다며 투정 부릴 때 따뜻하게 안아준 날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한 날이 더 많았다. 그런데 아이는 늘 내게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그럴 때마다 난 부끄러웠다. 아이를 위한다는 말로 포장해,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한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아이의 말에 위로를 받았다가, 다시 나를 돌아보게 되는 그런 하루였다. 하기 싫다면서도 매일 꾸역꾸역 자기 몫을 해내는 아이를 떠올리며, 오늘도 노트북을 켰다. 뭐라도 적어보기 위해서.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언젠가 아이가 다시 떠올리게 만들어 준 그 꿈을 위해서.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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