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분명 그저께까지 통화하며 곧 보러 갈 테니 잘 챙겨 먹고 있으라고 나는 말했고, 그러겠다고 대답했던 할머니였다. 그런데 왜 할머니 면회를 중환자실에 하는 거지? 어안이 벙벙한 채 간호사를 뒤따라 들어가니 할머니가 그곳에 누워계셨다. 할머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힘겹게 입을 여셨다.
여기 뭐 하러 왔노?
하루 건너 하루, 오전이고 오후고 자주 전화가 왔다. 골절로 요양원을 들어가신 지 이제 한 달에 접어드는 할머니는 병원이 답답하신지 자주 전화를 거셨다. 내 다리 이제 멀쩡하다. 이젠 집에 갈 수 있다. 집에 가고 싶다며 데리러 오라고. 하지만 병원 의사 선생님께선 아직도 퇴원은 무리라는 말뿐이었다. 할머니께 밥 잘 챙겨 먹고 물도 많이 마시고 건강해져서 집에 가자며 달래고 또 달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래도 처음 골절로 입원하셨을 때보다 점점 나아지시는 게 면회 갈 때마다 눈에 보여 우리는 곧 할머니가 퇴원하실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도 모르는 새 점점 이별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할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급성 폐렴에 걸리셨고 증세가 안 좋아져 발병한 지 이틀 만에 중환자실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중환자실을 들어가시고 바로 다음날, 의식마저 잃으셨다.
중환자실에 들어가시던 날. 면회 온 나를 보며.
여기 뭐 하러 왔노?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하셨던 그 순간. 할머니는 모든 힘을 긁어모아 나에게 말을 건넸다. 그 한 마디가 할머니께 들은 마지막 말이 될 줄은 몰랐다.
할머니, 왜 여기.... 있는 거야? 나보고 데리러 오라고 맨날 전화하더니. 할머니, 이게.... 무슨 일이야?
여름에 한바탕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내 두 뺨에 눈물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쏟아지기 시작한 눈물은 멈출 줄 몰랐고 하얀 마스크 안은 눈물로 가득 찼다. 우는 걸 들키지 않으려 숨을 참고 또 참으며 애써 말을 건네봤지만 떨리는 목소리까지는 숨길 수 없었다.
중환자실과 임종실을 오가는 동안 우리 가족들은 서로 눈만 마주쳐도 눈물을 쏟기 바빴고 전화벨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랄 만큼 점점 예민해져 갔다. 매일 절벽 위에서 외줄 타기 하는 기분이랄까. 매일이 불안하고 무서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할머니를 자주 찾아뵙는 것 말고는.
처음엔 자고 일어나면 이 모든 일이 꿈이길 바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의식이 돌아오시지 않을까?라는 소망은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씩씩한 척 괜찮은 척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다 한 번씩 툭하고 터지는 눈물 앞에 나는 땅 속 저 깊은 지하로 내동댕이 쳐졌다. 하루에 열두 번도 지상으로 올라왔다 지하 저 깊은 땅굴로 내려가는. 매일 그렇게 널뛰기를 반복했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위치에서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쩌면 급작스러운 죽음이 아니었기에, 평소 하지 못했던 말들을 건넬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동안 키워줘서 너무 감사했다고. 사랑한다고. 살아계실 때 못했던 말들을 의식 없는 할머니에게 우리는 매일 전했다. 의식은 없지만 그래도 들리지 않을까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서.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까? 평소처럼 누워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 선명하게 할머니의 영정사진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영정 사진이 걸려있는 장례식장에 서 있는 내 모습도. 뜨거운 물에 덴 듯 깜짝 놀라 깨어났던 그날 아침.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가까운 가족을 보내며 나는 또 한 번 깨닫는다. 결국 내가 힘들거나 아플 때 곁에 남는 이는 가족뿐이라는 것. 그리고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은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 가족은 언제까지나 내 곁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것.
할머니를 보내드리며 느낀 뒤늦은 후회와 자책은 반성과 결심으로 바뀌어갔다. 평소에 할머니를 더 자주 찾아뵐걸. 한 마디라도 다정하게 대답할걸. 건강하실 때 맛있는 거 더 많이 사드릴걸.이라는 후회와 자책은 앞으로 퇴근하는 남편에게 오늘도 수고했어라며 말 한마디 건네야지. 학교 다녀온 아이들에게 오늘도 애썼다고 안아줘야지. 오늘 하루도 일하느라 살림하느라 바빴을 나 자신에게 오늘도 수고했다고 칭찬해 줘야지.라는 새로운 결심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러한 결심도 살다 보면 희미해질 거라는 걸 잘 안다. 망각의 동물이기에 언제 그랬냐는 듯 남편과 열과 성을 다해 다투는 날이 올 것이며, 바쁜 아침 일어나지 않는 아이들을 향해 침 튀기며 고함을 지를 날이 올 것이다. 그래도 나의 무의식 저 한편에 오늘의 결심이 박혀있겠지. 스멀스멀 자주 의식의 수면 위로 올라와주길. 화를 내고 소리를 질러도 아차! 하며 다시 정신줄 잡을 수 있게 해 주길. 그리고 이번과 같은 후회와 자책을 하는 날이 다시는 오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