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vo, my life(1)
나는 1926년 황해도 옹진군에서 태어났다. 위로는 누나만 다섯명이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에 안가네가 아들을 낳았다고 온 마을이 야단법석이었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도 나를 보면 ‘그렇게 난리치고 낳은 아들이 벌써 이렇게 컸구만!’ 하면서 대견해 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그때는 여자가 아들을 못 낳으면 대가 끊긴다고 난리가 나던 시대였다. 오죽하면 우리 어머니가 아들 못 낳은 죄책감에 아버지께 첩을 얻게 하셨다. 당시 첩에게 논과 밭을 얼마 간 떼어 주었는데, 나를 낳자 그 여자 집에서 도로 무르자고 해서 돌려받았다고 한다. 당시 아버지 44세, 어머니 45세였다. 안 귀한 자식이 어딨겠냐마는 어렵게 얻은 아들에 대한 부모님의 애정은 각별했다. 더구나 나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해 골골대기 일쑤여서 부모님이 늘 노심초사 하셨던 기억이 난다.
일곱살 때, 밭에 거름 내는 달구지 앞채에 매달려 가다가 손이 미끄러져 깊이 팬 시골길 홈통에 빠졌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깩 하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내 위에 달구지 바퀴가 올라와 있더란다. 아버지가 나를 홈통에서 꺼내 안고 근처의 물웅덩이로 가 주물렀더니 깨어났다고 한다. 집에 와서 멍하게 있는데 아버지가 약이라면서 까만 물을 대접에 담아 가져오셨다. 맛을 봤더니 너무 쓰기에 안 먹겠다고 했다. 아버지가 너 이 약 안 먹으면 죽으니까 먹으라고 하셔서 가까스로 마셨다. 몸이 나은 뒤 그게 무슨 약이냐고 물었더니 마른 개똥을 불에 태운 물이라고 하셨다. 게 대체 무슨 효능이 있던건지, 지금도 종종 떠올리면 궁금해진다.
몸이 약한 안가네 아들은 이웃 사람들에게도 걱정의 대상이었다. 이웃들은 몸에 좋다는 것도 가져다 주고 자기네들이 아는 민간요법도 알려주고 했는데, 그 중 하나가 타관(他官, 다른 지방)물을 먹으면 건강해진다는 것이었다. 나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신 부모님은 수수를 잔뜩 심은 밭과 집을 누나들에게 맡긴 채 나를 데리고 길을 나섰다. 내 나이 여덟 살 때였다.
그렇게 셋이서 황해도의 각 골을 여기저기 다녔다. 어느날 어머니 목에 종기가 났다. 식사도 잘 못할 정도였다. 어머니는 나더러 '너 내가 여기서 죽으면 어떻게 할래' 라고 물으셨다. 너무 아프시니까 그랬던 것 같다. 아버지와 함께 고향으로 업고 가서 우리 산에 묻겠다고 대답했더니 안심하시는 눈치였다. 다행히 종기는 병원에 가려던 차에 저절로 터졌다. 아버지가 개슬게(개 쓸개)를 구해서 치료했다.
그 해 가을, 아버지가 황해도 일대를 다 돌았으니 집에 가자고 하셨다. 일곱달 만이었다. 돌아와 보니 봄에 심은 수수로 집 앞이 꽉 막히다시피 됐고 이삭이 영글어 모두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다. 누나들을 만나니 그렇게도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나는 집에 온 후로 점점 건강해져서 동무들과 새 사냥도 하고 썰매도 타고 재미있게 놀았다. 타관 물이 정말 효험이 있나보다 싶었는데 돌이켜 보면 자식 건강을 늘 염려하시던 부모님 덕이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