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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필작가 Feb 19. 2021

바다의 왕자는 아니었지만

Bravo, my life(2)


1.

 아버지는 살(어장)을 하셨다. 살물 보러 가실 때 나와 같이 가시는 것을 좋아하셔서 저녁에 가실 때면 따라가곤 했다. 살막이라고 방 하나만 있는 움막집이 있었는데 그 안에 덩굴을 구해다 불을 놓고 쪼이면서 기다렸다. 물때가 되면 살 안으로 큰 바구니를 가지고 들어가서 견자로 고기를 잡아 담았다. 살은 두 개의 골이 모이는 바다에 기둥을 기역자 형으로 죽 꽂고 거기에 나뭇가지로 엮은 발을 굵은 동아줄로 길게 묶어 만들었다. 물이 들어오면 나뭇가지로 만든 발의 위쪽은 물에 뜨고 아래는 매 놓았으니 붙어 있다.


 아버지는 물고기의 생태나 특징을 잘 알고 계셨는데, 어린 내겐 그런 것들이 마치 요술을 부리는 것 같았다. 어장의 2/3자 쯤 안쪽에서 와각와각하는 소리가 나면 아버지는 '오늘은 조기가 많이 들었네’ 하셨다. 들어가 보면 조기가 많이 잡혀 있었다. 또 어떤 날은 살 안에서 시퍼런 불이 왔다갔다하는 것을 멀리서 보고 ‘오늘은 갈치가 많이 들었구나’라고 하셨는데 정말 갈치가 많았다.

    


2.

 어느 날 동네 어르신이 농어 잡이를 가자고 하셨다. 내 기억에 해방되기 바로 전 해인 것 같다. 망둥이 낚시는 많이 했지만 농어처럼 큰 고기를 잡는 것은 처음이라 따라가겠다고 했다. 그날 저녁 배에 가보니 낚싯대는 없고 줄에 굉장히 큰 낚시를 달아 상자에 빙빙 둘러 놓았는데 여느 낚싯배 같지 않고 퍽 특이해 보였다. 20리 가량 가니 두 사람이 진작에 풀밭에서 배 양켠에 하나씩 달린 그물을 가지고 미끼로 쓸 고기를 잡고 있었다. 한 10cm 정도 되는 작은 놈을 열 마리씩 잡아서 배 뒤쪽에 매달린 미끼통에 넣었다. 산 채로 가져가려고 물에 담가서 끌고 가는거라 했다.


 농어 낚시터에 가서 부표를 띄우고 미끼를 낚시에 끼워 주낙줄이 다 될 때까지 배 닻을 내렸다. 대여섯 시간 기다리다가 낚싯줄을 올리며 앞으로 쭉 가면 농어가 올라왔다. 처음엔 재미있었지만 배가 기울거리며 파도를 따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니 무서워서 나중에는 안에만 콕 박혀 있었다. 농어를 몇 마리나 잡았는지도 몰랐다. 새벽이 되니 어르신이 고생했다며 40cm정도 되는 농어를 한 마리 주셨다. 어머니께 가져다 드리니 점심에 칼국수를 넣은 농어국을 끓여 주셨다.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수족관이나 횟집에서 농어를 보면 아찔한 배멀미부터 구수한 농어국의 맛까지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3.

 초등학교 3학년때까지는 여름에 학교 갔다 오면 보름 무렵만 빼고 망둥이 낚시질을 갔다. 하루는 낚시질을 갔는데 망둥이가 잘 안 물기에 미끼로 쓸 새우를 잡으러 아버지 살에 갔다. 살 안에 발을 집어넣는 순간, 갑자기 발이 쭉 미끄러져서 깜짝 놀랐다. 바닥에 있던 고기를 밟은 것이었다. 발로 더듬어 보니 꽤나 큰 녀석이었다. 손을 넣어 살살 더듬어서 머리 쪽을 찾아 두 엄지손가락으로 꽉 눌렀다. 녀석이 퍼드덕 하는 바람에 물을 온통 뒤집어쓰고 보니 광어였다. 가까스로 바구니에 구부려 넣어서 걸머지고 집에 왔다.      


 아버지가 마당에 앉아 살에서 잡은 고기를 손질하고 계셨다. 광어 잡아 왔다고 쭉 내밀었더니 물 바닥에 살아서 살에는 안 잡히는 고기인데 어떻게 잡았냐고 대견해 하셨다. 아버지는 내가 가져온 광어를 소금물에 담갔다 며칠을 말려서 구워 주셨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맛있게 먹었다. 나이가 들어 강릉이나 속초에 가서 광어를 먹어 보았지만 어렸을 때 고향에서 먹었던 것만큼은 아니었다. 그 크고 맛있던 광어도 불앞에서 정성스레 광어를 구워주시던 아버지도 모두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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