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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필작가 Nov 28. 2021

눈에 선한 내 아이들아

이국 하늘에서 띄운 편지(3)

대필작가의 말


 할아버지가 자녀분들, 그러니까 저희 아빠와 고모에게 쓰신 편지를 옮겨 보았어요. 아이들이 행여 발 사이즈 재는 법을 모를까 한땀 한땀 자를 그려 넣으신 모습에 미소가 지어지다가, 안녕- 했다가 할말이 또 생각나 적고 다시 빠이빠이- 하는 젊은 아버지의 모습에 눈가가 간질거렸어요. 어린 딸에게 보낸 펜팔 커닝 페이퍼(?)도 있네요. '우리는 모두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대목이 외려 아버지가 모두를 그리워하고 읽다는 것처럼 읽혀 애잔하다가 편지지 부족으로 사촌에 해석을 맡기고 급 마무리하시는 모습에 피식 웃고 말았답니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품안의 자식일 때가 좋으셨을까요? 아이들이 자라면 둥지를 떠나 새 보금자리를 꾸리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또 그렇게 제 역할을 하면서 사는 모습은 보기에 기꺼울테지만... 다같이 모여서 투닥거리다 웃다 하며 복작대던 그 시절이 그리우시지는 않을까요. 지금도 가끔 그때로 돌아가는 꿈을 꾸시지는 않을까요..


 




(1)

 보고 싶은 렬이에게     

 아버지에게 기대가 제일 많을 렬이가 무어 사다 달란 말은 않고 아버지만 잘 있다 오기를 바란다는 말을 편지마다 쓰는 그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할머님도 안녕하시고 큰아저씨와 엄마도 안녕하시고 누나와 동생들도 잘 있지? 률이 선이는 무얼 사 오라던? 네가 매번 말하는 텔레비전은 꼭 사 가지고 갈 터이니 염려 말아라. 그 외에 네가 제일 가지고 싶은 것이 무언지 이번 편지에 꼭 적어 보내라. 이젠 여기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하나하나씩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누나와 동생들한테도 물어보아라. 퍼런 샤쓰를 입고 좋다고 펄펄 뛰던 네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요번에 Tom이 너 갖다 주라고 장난감 카메라를 하나 주어서 가져다 두었다. 아마 사진이 잘 나올 것 같다. 그리고 Tom이 엄마가 보낸 인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집안 식구들 신발을 하나씩 주겠다고 하는구나. 발을 재어 보내라고 하니 인치로 재면 되고, 엄마와 누나, 너, 선이 률이 모두 재서 보내라. 이렇게 하면 된다. 널판자 위에다 발을 올려놓고 그림과 같이 재면 된다.      


 

 인치자로 재라. 조금  것이 나을 거야. 아버지가 2.25 인치다.   있는 대로 빨리 회답하여라.      

 

 그리고 요번에는 봉투에다 편지하면서 우리 식구들이 다 들어 있는 사진 한 장 아무거나 보내라. 사진 뒤에 ‘Mr. Tom에게 이 Picture를 드립니다’라고 쓰면 알아보고 더 좋아할 게다. 돌아갈 적에 그 사람 사진도 가지고 갈게. 하고 싶은 말이 많다마는 요다음에 또 하기로 하자. 누나, 동생들과 잘 놀고 엄마 속 안 썩이도록 해라. 우리 렬이나 선이, 률이는 누나 말도 잘 듣고 엄마 속도 안 썩일 줄로 믿는다. 내내 안녕…      


 할머니한테 아빠는 할머니가 항상 축원하시는 덕분에 몸 성히 잘 있으니 안심하시고 할머니나 내내 안녕히 계시라고 말씀드려라. 아참, 잊을 뻔했다. 오늘 Mr. Tom에게 갔더니 나 신으라고 자기 거랑 같은 구두를 주어서 갖다 놓았다. 아침에 엄마에게 편지를 했는데 Tom이 발을 재어 보내라고 해서 또 편지를 썼다. 빠이빠이…      


너희들이 기다리는 아버지로부터, 6월 22일.



(2)

 사랑하는 숙이에게     

 그간 할머님께서 안녕하시고 엄마와 너도 잘 있느냐? 그리고 렬이 선이 률이도 다 잘들 노느냐? 뭐 먹고 싶은 거나 하고 싶은 것 있거든 엄마한테 사 달라고 해라. 그리고 엄마 속 썩이지만 말면 된다. 렬이 선이 률이도 다 사이좋게 지내고 동생들이 잘못하는 것이 있어도 네가 달래서 엄마 속 안 썩도록 해라.      


 여기 와서 한 미국 가정을 가게 되어 이런저런 얘기 하던 끝에 우리 가족사진을 보여 주었더니 부인이 너와 펜팔을 하고 싶다고 하는구나. 부인이래봤자 이제 17세란다. 애기가 하나 있고, 남편이 지금 나 있는 부대의 군인인데 나이가 21세야. 네가 참 귀엽다고 하면서 꼭 펜팔 하고 싶다고 하니 꼭 편지하여 주어라. 35원인가 주면 항공 우편 편지를 살 수 있으니까 꼭 해주어야 한다. 네 사진이 있거든 한 장 보내고. 그리고 한국 인형 때때옷 입은 것 하나 사서 보내주어라. 할 말이 많다마는 다음으로 미루고 네가 편지 쓰기가 힘들 것 같아 내가 써서 보내니 베껴서 보내면 된다. 아직 결혼 안 한 사람 같으면 명철이한테 하라면 좋을 텐데 결혼도 했고 네가 귀엽다고 너랑 펜팔 하고 싶다고 하니 네게 보낸다.     



 이렇게 쓰고 동그라미 친 데다 네 이름을 싸인 같이 써서 보내면 된다. 대충 내용을 말해주면 ‘우리 아버지한테 편지를 받았는데 나하고 펜팔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니 기쁘다. 오늘날까지 나는 외국에 사는 친구가 없었거든. 너도 알겠지만 나는 한성중학교 2학년이고 두 남동생과 한 여동생이 있어. 우리 모두는 우리 아버지를 매우 그리워하고 있단다…’  명철이보고 나머지는 해석해 달라고 해라.


 안녕~ 아버지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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