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 하늘에서 띄운 편지(6)
대필작가의 말
2022년 임인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할아버지가 26년 범띠이시니, 검은 호랑이의 해인 올 한 해 좋은 기운 받아 더욱 건강하셨으면 좋겠네요.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도 새해에는 무엇보다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편지를 보는데 저는 갑자기 전 중위님을 맞았을 때 가족들의 모습이 어땠을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이국의 내음을 묻힌 젊은 군인이 아버지의 편지와 선물을 가지고 집안을 들어설 때 가족들이 느꼈을 설렘과 호기심, 더욱 짙어졌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들이 말이에요. 전 중위님 편에 선물을 보내놓고 가족들의 반응을 오매불망 기다리셨을 할아버지의 모습도 어땠을까 싶고요.
그리고 저희 아빠가 조기 유학(!)을 가실 수도 있었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네요. 다음에 자세히 여쭈어볼 이야기가 또 생겼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ㅎㅎ 이야기를 발굴하는 재미가 있네요.
그리운 당신에게
날이 자꾸 가자 점점 더 보고 싶어지는군요. 그간 어머님께서는 좀 기력이 좋아지셨는지요? 그리고 온 집안 식구들 모두 안녕들 하신지요? 큰 형님께서도 잘 되셨는지 궁금하군요.
일전에 숙이에게 보낸 편지 꼭 회답해 주도록 하세요. 여기서는 매일 기다려지는 것이 편지밖에 없어요. 신문을 보니 비행기 사고도 있었고 일선에서 충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요새는 조용한지요?
그리고 요번에 같이 왔던 전 중위 님께서 귀국하시는데 그 편에 아주머니 말씀하신 흰 옷감 6마를 끊어 보낼게요. 3.54불에 세금 합쳐서 3.65불인가 했습니다. 그리고 스카프 3개와 숙이 물감 한 곽, 볼펜 한 개, 루즈 한 개, 연필 한 다스를 같이 보냅니다. 여기 올 적에 얻었던 항공 조종사, 에어 걸 배지와 고무풍선도 함께 보내니 잘 받으세요. 전 중위님께서 찾아가시면 꼭 잘 대접하여 주시고 잘 받았다는 회답도 꼭 주길 바랍니다.
또 한 가지 기쁜 소식을 전할게요. 다름 아니라 렬이를 자기에게 보내도록 보증 서 주겠다는 사람이 생겼어요. Tom이라고 큰 상점을 두 군데나 가지고 있는 분이에요. 중학교나 마치고 고등학교 가기 전에 보내라고 하네요. 사람 편이든 배편이든. 자기가 공부할 수 있도록 하겠답니다. 아주 좋은 분이에요.
오늘은 고무신 한 켤레를 가져다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당신 주라며 빨래 짜는 기구와 소포 값 5불을 주었어요. 그뿐만이 아니라 당신 주라고 손지갑(비니루 같아요)과 숙이 것 반짝이는 지갑, 렬이 지갑과 선이 빙수 만들기 놀이 소꿉 장난감 그리고 률이 주라고 장난감 권총 한 개를 줬어요. 각각 이름을 써서 꾸려 놓았으니 조만간 소포로 부칠게요. 아마 세관에 세금을 물어야 할 텐데 세관 담당자에게 이 편지를 보이고 선물로 미국인이 보내온 것이라고 말하면 잘 될 겁니다. 그리고 만약 권총 장난감이라 뭐라 하거든 김ㅇㅇ씨를 대 달라고 하면 도와줄 터이니 꼭 찾아다 률이 좀 기쁘게 해 주세요.
빨래 짜는 기구 설명을 해줄게요. 손잡이에 달린 너트를 위 중앙에 끼우고 빨랫감을 두 막대 사이 밑으로 대고 돌리면 물이 쪽 빠집니다.
비싼 물건은 아니지만 당신이 하루 종일 빨래와 식사 준비에 바쁘겠다며 신경 써 주니 이런 고마운 분이 어디 있겠어요.
그리고 여기 한 3만 원 주면 차서방 것 만한 카메라를 살 수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꼭 하나 사다 드려야 하는데... 한 번 물어보세요. 그리고 명철이 한 사람 사귀게 해주어야 하는데 마땅한 사람이 없어요. 소자도 하나 소개해 주고 싶은데 갸들 또래는 벌써 애 낳고 산단 말이에요. 다른 애들은 너무 어리고. 하여간 가기 전까지 힘써서 꼭 한 사람씩 사귀게 해 볼 테니 그렇게 전하세요. 이 편지는 빨리 가야 약 20일 걸릴 겁니다. 그럼 안녕...
추신 : 요 전 편지에 률이는 아무것도 안 써서 섭섭했다. 요번엔 그림이라도 그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