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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필작가 Jan 16. 2022

형님 전 상서

이국 하늘에서 띄운 편지(7)

대필작가의 말


할아버지가 형님, 그러니까 할머니의 오빠에게 쓰신 편지입니다. 할아버지가 비록 혈혈단신 남한에 남으시긴 했지만 다행히 좋은 분들을 가족으로 만나신 것 같네요. 이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할머니께는 말 못 한 것들까지)를 공유하시는 것 보면요. 끊이지 않는 돈 걱정부터 새로운 문물을 접한 신기함, 형님에 대한 고마움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까지. 작은 편지지를 앞뒤로 꽉 채우고도 옆의 여백까지 쓰신 것 보면 어지간히 할 말이 많으셨던 모양이에요. 사실 할아버지가 형님 앞에서 이렇게 조곤조곤 말씀하시는 스타일은 아니셨을 것 같은데, 멀리 떨어져 있기에 더 가깝고 애틋해지는 사이도 있는 것 같지요?:)





형님 전상서

4294년(*1961년) 5월 17일 낮에


 형님과 아주머니를 헤어진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었습니다 그려. 세월이 참으로 빠르지요? 그간 숙이 엄마한테 온 편지에서 다들 무고히 계시다는 말을 보았습니다. 참 반가웠어요. 아주머니 요새는 좀 어떠신지요? 형님은 과히 바쁘시지나 않으신지요? 현자 몸성히 잘 있고 승자, 종석이 그리고 종순이 학교 잘 다니고 종선이도 잘 놀기를 3,600리 떨어진 이곳에서 늘 축원하고 있습니다.


 숙이 엄마가 요즘 어떻게 지내는 지 궁금합니다. 일전에 수열 아버지한테 50,000 환 빌려 갔다는 편지는 받았는데 아낀다고 먹을 것도 잘 안 먹고 애들 용돈도 제대로 못 주는 것 같아요. 저한테는 늘 괜찮다고만 이야기하는데 걱정이 됩니다. 아낀다고 안달복달하는 것 같아요. 형님이나 아주머니께서 집사람 너무 애쓰지 않도록 말 좀 하여 주세요. 모두 힘드신데 저만 걱정 없이 지내는 것 같아 송구합니다. 저는 어른들이 염려하여 주신 덕분에 올 때도 고생 하나 않고 여기 와서도 전혀 힘들지 않게 지내고 있습니다. 사실 숙이 엄마가 주책맞다고 생각할까 봐 말 못 한 것이 하나 있는데 형님께 고백하려고요. 여기 와서 담배를 안 피우려고 해 봤는데 공상 때문에 못 견디겠어서 부득이 사흘에 한 갑씩 피웁니다. 안 피우겠노라 했지만...


 여기 식사는 식당에 가서 먹으면 월평균 70불 정도입니다. 그래서 주로 빵과 버터를 사 먹어요. 20불 정도 덜 듭니다. 이발, 세탁, 담배값, 구경 값, 여비 합쳐서 약 30불가량 들었어요. 올 때 여비 탄 것을 안 쓰려고 애썼는데 170불 밖에 저금을 못했네요. 워낙 여관비니 식대, 물건값이 비싸서 많이 썼어요. 요번 달 봉급 타서는 160불 저금했습니다. 용돈 쓸 것도 충분히 챙겨 놓고 말예요. 구경 잘하고 대우 잘 받고 용돈까지 생기니 좋은 곳이야요. 오면서 하와이, 샌프란시스코, 일본 구경도 잘했습니다. 이동할 때는 미군 하사관이 가방을 들어서 세단에 실어 주고 차에서 내리면 목적지까지 들어서 주어요. 대우가 그만이지요. 미국인들은 민간인들도 굉장히 친절한 게 인상 깊었습니다. 경제적인 부에서 나오는 마음의 여유일까요?


 지난주에는 뉴욕 구경을 다녀왔습니다. 도시는 깨끗하지 않았지만 집들이 전부 30, 40층이어서 입이 떡 벌어지더군요. 그중에서도 102층짜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올라가니까 구름이 집 중턱에 걸쳐 있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집들이 조그맣고 차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게 마치 불개미 떼가 줄지어 가는 것 같았어요. 상점에도 더러 들어가 봤는데 역시 어떻게 하면 곯려 팔까 하고 덤벼들더군요. 진열장에 있는 물건들은 전부 가격표를 눅게(*싸게) 붙여 놓았는데 안에 들어가서 물어보면 엄청나게 불러요. 내가 천치같이 보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미국에 와서 경험도 좀 하고 배우기도 퍽 했습니다. 집 둘레에 있는 무성한 풀을 낫으로 깎는 것이 아니라 기계에 사람이 타고 가면 이발 기계로 이발한 것 같이 깨끗이 깎입니다. 참 별천지야요. 그치만 무엇보다 이곳에 와서 제일 놀란 것은 여성 인권에 대한 것입니다. 어느 여자를 막론하고 정말로 자유로워요. 여자에 대한 대우가 마치 우리나라에서 할아버지 위하듯 합니다. 어디를 가나 여자가 우선권을 갖고 있고 자기 남편이 있건 없건 자기 마음대로 놉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해요. 불쌍한 것은 우리나라 여자들이지요. 그리고 차 값이 눅은 관계인지는 몰라도 차 한 두대 없는 집이 없습니다. 애 있는 집에는 자전거도 몇 대씩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자전거 한 대 사기보다 이곳에서 차 한 대 사기가 더 쉬운 것 같습니다. 차 쓸만한 것은 약 200불 주면 사데요. 낮은 것은 100-50불짜리도 있답니다. 신작로에 10분 아냐 20분, 몇 시간을 가도 걸어가는 사람은 만날 수가 없습니다. 다 차로 다니지요. 보통 자동차 속도는 60-80마일 정도 돼요. 외국 장교인 우리에게도 공식으로 사용하도록 세단차가 있어요. 공동으로 사용하는데 아무 때라도 부르기만 하면 옵니다.


 요전에 숙이 엄마가 시계와 목걸이를 이야기했는데 피-엑스에 가니까 3불에서 14불짜리까지 있고 시계는 14불에서 42불짜리까지 있군요. 시장에 가서 한 번 물어보도록 이야기하십시오. 시계는 부로바, 벤루스, 엘징이야요. 자동 시계지요. 온값은 좀 싼 것 같은데 세관 때문에 안 삽니다. 42불이면 우리 돈으로 62,160 환이고 14불이면 우리 돈으로 20,720 환입니다. 전기다리미는 7불에서 14불까지 있어요. 다음 편지에 어떻게 하라고 말해 주시면 사든지 그만 두든지 하겠습니다. 필요하신 물건이 있거든 시장 가격을 알아보셔서 함께 적어 보내주십시오. 애들이 굉장히 보고 싶어요. 앞으로 두 달 반이면 돌아갑니다. 엊그제부터 티비와 라디오에 우리나라 이야기가 자꾸 나와요. 내내 안녕들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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