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이 넘으신 시어머님은 김치를 정말 잘 만드신다. 어머님은 항상 '나 죽기 전에 김치 만드는 법을 배우라'고 하신다.
어젯밤 시누가 밤 10시에 핸드폰으로 무 2개를 주문한다. 새벽에 배송된단다. 시골 살아서 배달에 익숙하지 않다. 서울은 다음날 새벽에 배송된다니 놀라운 세상이다. 그렇지만 버겁겠다. 어머님께서 아침에 무생채를 만드신다길래 꼭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새벽에 부엌에서 딸그락 소리가 나서 뭐 도울일이 없을까 하고 나갔다. 어머님께서 할 일 없다고 손사래를 치시며 더 자라고 하신다.
흑.. TT
그런데 그 새벽 순식간에 무 2개로 무생채를 만들어버리셨다. 꼭 배우고 싶다는 얘기를 잊으셨나 보다.
아침식사를 하고 나서, 한가해지시면 무생채 만드는 법을 꼭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어떻게든 무 하나를 구해오겠다고 하니 웃으신다. 유튜브에 무생채 레시피가 천 개도 넘을 것이다. 남편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어머님표 무생채를 배우고 싶다.
설날 아침, 무작정 나가 무찾기 삼매경을 했다. 겨우 찾은 슈퍼에서 무 1개에 3500원이다. 30분 거리 시골에서는 1980원이었는데 서울 무는 좀 다른가보다. 일단 1개를 사서 시댁으로 돌아왔다. 시누와 시어머님이 못 말리겠다는 듯 한번 더 웃으신다.
1. 무 겉면을 씻는다. 무의 양끝을 바짝 자른다. 연두색 부분을 너무 많이 잘랐다고 한소리 하셨다. 흰 부분처럼 아주 조금만 자르면 된다고 하신다. 껍질은 안 벗기신단다. 다음부턴 양 끝부분을 배 깎듯 깎아야 낭비가 없겠다.
2. 무를 통째로 잡고 측면부터 강판에 갈라고 하신다. 손 다치니 무를 절반 자르지 않고 그냥 하라고 하셔서 바닥에 놓고 앉아서 했다. 무 끝 조금 남은 건 손 다칠까 봐 칼로 채를 썰려다 그냥 먹었다.
3. 무의 양을 보고 고춧가루 3~5스푼 정도를 골고루 뿌려 버무린다. 빨간 물을 입히는 거라 표현하셨다. 어머님은 일회용 장갑을 잘 안 쓰시고 맨손으로 버무리신다고도 하셨다. 무가 크니 5스푼의 고춧가루를 넣으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4. 마늘을 다져서 한 스푼 반을 준비하고 대파 2대는 어슷 썰어 준비한다. 맛소금, 설탕, 액젓을 준비해 넣는다. 맛소금 1스푼, 설탕 3스푼, 액젓 3스푼. 어머님께서 맛소금을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맛있으면 미원, 다시다 등 MSG를 넣어도 상관없기에 맛소금쯤이야 괜찮다.
5. 고춧가루 한 스푼을 추가해서 마지막으로 버무린다. 맛을 보면서 설탕, 소금, 액젓을 추가해서 간을 맞춘다고 하신다. 맛을 보시더니 싱겁다시며 엄청난 양의 맛소금과 액젓 세 스푼을 더 넣으신다. 생각보다 염분이 많이 들어간다.
대충 ~~~~ 맛을 봐가며 추가한다는 마지막 부분이 어렵지만 하다 보면 는다고 하신다. 참깨나 참기름은 절대 넣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제 퇴근하며 무 하나 사서
간단히 무생채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친정어머니도 정말 음식을 잘하셨다. 된장, 고추장, 간장이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집이라고들 하셨다. 엄마가 만드시던 채지(무생채)에는 고춧가루를 많이 넣지 않으셨다. 말 그대로 무에 빨간 물만 약하게 들이셨다. 분홍에 가까웠다. 설탕이 조금 많이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설탕 대신 매실액을 넣기도 하셨다. 참기름에 채지만 넣고 밥 비벼 먹어도 맛있었다. 친정엄마는 항상 밭에서 바로 무를 뽑아 만드셨다. 밭이 냉장고였고, 거의 모든 채소를 자급자족하셨다.
오늘 드디어 무생채를 배웠다. 총각무(달랑무), 깍두기, 배추김치, 무청 얼갈이김치, 파김치, 백김치, 동치미는 언제 배우나 싶다. 어머님은 무생채 만드는 방법과 다른 김치 만드는 방법이 기본적으로 같다고 말씀하신다. 총각무는 소금에 절여 만드신다고 한다. 열무김치는 열무를 절이고 찹쌀풀이 아닌 밀가루풀을 만들어 조금 넣어야 깔끔하다고 말씀하셨다. 김치의 세계는 어렵고도 간단하다.
오늘 새롭게 느낀 게 어머님은 내게 김치 만드는 법을 설명하시는 게 좋으신가 보다. 평소보다 더 열정적으로 김치 만드는 법을 설명하셨다. 다음에는 열무김치를 배워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