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설거지 대신 쓰는 글
예전에 미혼 동기가 부러웠던 적이 있다. 남이 부러워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매번 그녀의 카톡 프사가 바뀌었다. 보고 싶지 않아도 그 동기가 "ㄱ씨"여서 보게 되었다고 핑계를 대본다. 발령증, 합격증, 여행 사진, 성적표, 기관장 상장, 뭔가를 발표하는 모습, 꽃다발 등 수시로 새 사진이 올라왔다. 남의 프사에 전혀 관심 없었는데 유독 화려하게 업데이트되는 그녀의 프사가 눈에 들어왔다.
그즈음 사춘기 아들놈이 기대만큼 똑똑하지 못하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고, 직장인으로서 열심히 해도 잘(!) 하지 못하고 제자리 걷는 느낌이 들 때였다. 미혼동기의 상태가 아니라 내 상태가 문제였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동기였지만 인생최대목표가 '결혼의 짝'을 만나는 거라고 많은 사람 앞에서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내가 그녀와 다른 점이라고는 결혼해서 기쁨과 고통을 더하고 빼서 쌤쌤 제로베이스 상태라는 것뿐이다.
당시, 남편과 주 5일 새벽 수영을 다녔다. 1년 넘게 새벽 6시 수영을 하고 출근하는 루틴을 갖고 있었다. 수영하며 말할 일이 없기에, 같은 레인의 사람들도 우리가 부부라는 사실은 몰랐다.
상념에 잠겨 레인을 미친 듯 돌았다. 수영이 좋은 이유는 웅웅 거리는 물속에서 끊임없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몸집이 큰 아저씨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을 거신다.
"저기 저 새로 들어온 아가씨는 우리보다 늦게 들어왔는데 진도가 빨라. 화나지 않아요? 난 화가 나. 강사가 우리는 기술을 제대로 안 알려주는 거 아니야? 아휴! 아침마다 화나."
그 아저씨가 말하는 새로 들어온 처자는 정말 진도가 빨랐다. 수영을 배우려는 열의가 있었다. 수영강습이 없는 토요일에 가끔 수영하러 갔는데 갈 때마다 그녀가 물속에 있었다.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이것저것 수영자세를 물어보고 배우는 그녀를 자주 목격했다. 자체를 즐기고 몰입해 버리니 수영이 늘 수밖에 없었다.
수영이 빨리 느는 처자에 대해 아침마다 얘기하는 아저씨를 보며 물속에서 머릿속으로 독백했다. '뭐 제가 박태환 선수처럼 되고 싶은 건 아니라서요. 저는 하루종일 책상 앞에 앉아 일하기 때문에 굳어진 근육을 깨워보고자 수영하는 것일 뿐이에요. 그 처자의 일취월장하는 실력에 박수를 보내고, 저는 제 발끝에 온신경을 집중하며 힘차게 물살을 찰뿐이에요.'
갑자기 미혼동기의 카톡 속 화려한 일상이 떠올랐다. 그 미혼도 여러 성과를 내며 카톡 속 인증사진을 만들어내기까지 고생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물속 발길질이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세상에 얼마나 잘나고 뛰어난 사람이 많은데 부러워하며 살기에는 뒤뚱뒤뚱 내 갈길이 바쁘다. 말 그대로 "뭣이 중헌디"싶다. 수영 꿈나무 처자에 대한 아저씨의 뒷담 덕분에 공중에 떠다니는 동기의 프사가 더 이상 부럽지 않게 되었다. 속도와 방향이 다른 것뿐이다. 하나의 삶일 뿐이었다.
오늘도 아들의 학원 숙제를 점검하고, 애들 점심 도시락 싸놓고 뒤뚱뒤뚱 출근이나 해야겠다. 머뭇거리기에는 갈길이 바쁘다.
제가 박태환 선수가 되고 싶은 건 아니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