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텃밭 찍고.

by 자급자족

퇴근하고 텃밭에 다녀왔다. 손톱밑에 흙이 끼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안 좋게 볼 수도 있겠다. 하루면 없어지는 손톱 밑의 흙. 엄마 손을 닮았다. 8만 원짜리 네일아트보다 예뻐 보인다. 퇴근하고 텃밭에 간걸 남편이 알게 되면 흘겨볼 것이다. 제발 여러 가지 말고, 한 가지에만 집중하라고 할 것이다. 텃밭은 남편의 기호품 청하나 전자담배와 같다. 무엇보다 흥미롭게 생각하는 내 유일한 취미다.


특별히 할 일이 있어서 텃밭에 간 건 아니다. 땀도 빼고 생각도 빼러 갔다. 가서 보니 할 일이 많다. 오이의 허리가 댕강 끊어져 있다. 범인은 딸과 아들, 둘 중 하나일 거다. 난 물을 주라고 했을 뿐이다. 빈자리에 이름 모를 씨앗을 뿌릴까 하다가 '잘못된 걸 지금이라도 바로잡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바로잡으면 된다. 세상 안 무너진다. 무작정 종묘사에 들러 오이모종 3개, 호박모종 2개, 쇠 꼬챙이 50개를 사 왔다. 왼쪽 할아버지네 텃밭을 관찰해 보니, 오이와 호박을 생각했던 것보다 더 촘촘히 심으셨다. 할아버지 모종 간격을 보고 나도 따라 심어보려 한다.


텃밭 오른편에 올해부터 새로 농사를 짓는 아저씨는 초보신가 보다. 나도 초보인데 아저씨는 더 초보다. (고추 Y자 방아다리 아래 잎 제거, 오이와 애호박 곁순 따주기, 토마토 주가지만 키우기)를 하셔야 할 타이밍인데, 안 하신다. 아저씨의 성향이 어떤지 몰라 아무 말하지 않을 생각이다. 아저씨의 치명적 단점이 있는데 밭 가장자리의 풀을 안 메신다. 왼편 할아버지의 풀 제거 덕분에 '나도 그동안 편히 농사 지었구나' 싶었다. 아저씨 밭에서 침범해 온 풀을 열심히 메고 있었다. 아저씨 왈 "새댁은 농사 쪽 출신인가 봐. 농사를 참 잘 짓네"하신다. 풀메며 눈짓으로 미소 짓다가 '농사 쪽 출신은 어디지?'하고 만다. 맞긴 맞다. 농사 쪽 출신.


풀 제거 작업을 위해 재활용 플래카드를 주워놨다. 오른쪽 텃밭 아저씨네 고랑을 덮기 위함이다. 검정 잡초매트를 사려니, 비싸다. 100% 잡초 발생 차단은 아니지만 70% 잡초를 제거해 주는 재활용 플래카드 천을 사용하기로 했다. 천을 고정시키기 위해 쇠 꼬챙이를 사 왔다. 난 10개 필요한데, 100개 단위로 파신다. 50개만 구입해도 되냐고 여쭤봤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신다. 나도 절레절레 흔들며 가게를 나오는데, 아주머님이 뒤따라 나오시며 반값을 받고 50개를 파셨다. 10개를 사용하고 40개는 고이고이 싸서 스티로풀 재활용 연장박스에 넣어놨다.


눈에 보이는 대로 텃밭 작물 돌보기 작업을 했다. 물 흠뻑 주기, 지금은 고추의 줄기를 키워야 하는 타이밍이라 Y자 방아다리에 달려있는 고추는 모조리 제거했다. 그걸 제거해 주면 줄기가 더 잘 뻗어간다고 한다. 모종과 모종 사이에 구멍 뚫어서 추비 하기, 며칠 못 올걸 생각해서 어린 애호박모종과 오이 모종을 위로 매달아서 유인줄 달아 힘 받게 하기, 궁채 모종 나눠 심어주기 등을 했다.


농장 아저씨네 미니 비닐하우스도 구경했다. 사이즈가 나 혼자 핸들링 가능한 크기다. 아저씨께 특별히 바질을 하우스 안에서 키울 이유가 있냐고 여쭸는데 없다고 하신다. 근데 확실히 잘 자란다고 한다. 나중에 김장무, 김장배추, 마늘, 양파, 생강은 비닐하우스가 유용하리라 생각한다. 하우스 지을 땅은 없다.


땀이 훅~ 나서 어깨도 마음도 시원해졌다. 남편과 아들 딸이 주말에 잠깐 텃밭에 들렀을 때, 주렁주렁 열린 애호박과 오이를 관찰하고, 고구마와 감자를 신나게 수확했으면 좋겠다. 오늘도 가족 몰래 텃밭의 작물을 돌보다 간다.



남편과 애들이 수확했으면 하는 첫 호박
집게 유인 - 녹색 망을 집게 중앙부분에 끼운다.
Y자 방아다리 아래 잎떼주고 고추도 떼주기
마디마다 오이
오이 새 모종
토마토 어미줄기 하나만 남겨서 키우기
잡초매트 대신 플래카드 재활용
현삼 - 뭔지 모름. 호기심에.
영아자 - 뭔지 모름. 호기심에.
농장 아저씨네 미니 비닐하우스 - 사고 싶어서 벤치마킹중 -미니사이즈라 나 혼자도 감당 가능한 몸집이다.
하우스 안- 바질, 아주 잘 자란 잎채소
하우스 안-농장 아저씨의 아이디어 강력 자석으로 농기구 붙여놓기
하우스안
하우스안 바질
하우스안 잎채소
하우스 안 잎채소
하우스 안 잎채소
하우스 안 잎채소
하우스 안 잎채소
미니 하우스 브랜드- FERICO
머위
나물용 고춧잎 구입
궁채- 과연 자랄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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