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법은 파기름
일기를 쓰는 대신 냉동실 번데기를 꺼냈다. 생각을 비우기 위해 번데기 볶음을 만들기로 했다. 브런치 글 수는 내 방황의 수다. 멍 때리며 아무 주제나 잡히는 대로 쓴다. 오늘 주제는 뜬금없는 번데기다.
예전에 기억 속 번데기맛을 찾기 위해 열 번 넘게 요리 연습을 했다. 번데기 통조림 한통 사 먹으면 되는데 사서 고생이다. 통조림번데기와 깐 메추리알은 구입하고 싶지 않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메추리알도 날것을 삶아 껍질 벗겨 사용한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기억 속 번데기 맛을 찾은 듯해서 레시피를 기록해 두었다. 그 맛이 재현되나 오늘 실험해 보기로 했다
딸에게 "엄마는 번데기를 만들 테니 그동안 수학숙제를 하라"고 했다. 딸이 칼칼하고 매콤하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한다. 중1 딸은 낙지탕탕이를 제일 좋아하는 식성을 가지고 있다. 냉장고에 전용 낙지 젓갈통을 보유하고 있는 딸은 역시 칼칼한 번데기를 선호한다. 중3 아들은 매운 음식을 못 먹어서 중간맛을 지켜보려 노력한다. 다음의 순서 그대로 요리했다.
- 냉동번데기 두 컵을 흐르는 물에 씻었다.
- 끓는 물에 소금과 미림을 조금 넣고 번데기를 휘휘 데쳤다.
- 찬물에 헹궈 채반에 받쳐놓는다.
- 고추 1개, 마늘 3개, 양파 반 개, 대파 흰 부분 반개, 다시마 1조각을 준비했다.
- 식용유 2스푼을 두르고 편마늘, 대파, 양파, 당근을 넣고 야채+파기름을 내기 위해 볶는다.
- 야채 자체로도 맛있게 익었다 싶을 때 번데기, 다시마를 넣고 볶다가 스텐컵으로 물 1컵 반을 넣는다.
- 액젓 1스푼, 국간장 1스푼, 고춧가루 1 티스푼을 넣고 휘휘 섞는다.
- 뚜껑 덮고 끓인 후 다시마를 건져내 버리고 어슷 썬 일반고추의 속을 한번 헹궈 넣는다.
- 국물이 자작한 번데기볶음 완성이다. 맛을 보니 어렸을 때 그 맛이 맞다. 술안주로 팔아도 될 맛이다.
딸이 수저로 국물이 자작한 번데기를 먹더니 칼칼하게 맛있다며 밥을 비벼먹고 싶단다. 2차 지필평가 준비를 하느라 10시에 귀가한 아들도 한 그릇 먹는다.
동의보감에는 허약하고 야윈 아이들의 원기회복과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번데기를 먹였다고 한다. 단백질 보충용으로 사용한 듯하다. 영양과잉 시대인 지금도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아이들의 키가 컸으면 좋겠어서 냉동고에 소분해 두고 가끔 만들어준다.
아이들이 번데기를 다 먹으니 밤 10 시가 넘었다. 중1 딸은 옆동에서 친구 두 명이 파자마 파티 중이라며 본인도 가도 되냐고 묻는다. 중3 아들은 스터디카페에 가서 공부하고 와도 되냐고 한다. 아주 버라이어티 해서 적응이 힘들다. 양치시키고 각자의 방에서 잠을 재우고 한숨을 돌린다. 회식 후 대리기사님 도움으로 귀가 중이라는 남편만 재우면 임무 끝이다.
직장맘에게는 방황이 사치다. 진행하던 프로젝트에 다시 몰입해야 일상의 중립을 지킬 수 있을 듯하다. 이제 자자. 아니지. 남편 안전귀가 후 자야겠다. 눈이 감긴다. 버라이어티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