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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급자족 Oct 10. 2024

직장인의 재개발

모든 걸 자급자족하는 시골마을에서 자랐다.


하늘에서 뚜껑을 덮으면 덮어지는 17 가구만 사는 마을이었다. 나에게 집이란 가족이 따뜻하게 몸 눕힐 곳이면 되는 거였다. 돈보다 더 소중한 가치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신입직원 시절 들어놓은 연금이 곧 개시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아직 은데 벌써 연금을 받아가래요"라고 했다. 선배는 수화기 너머로 한심한 듯 혀를 끌끌 찼다. 


"넌 공부한다며, 재테크 공부나 해라"라고 했다.


그리고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빨리 팔라고 한다. 연금이 곧 개시된다고 했을 뿐인데,  뜬금없이 재테크 공부에, 집을 팔아버리라니...


가족이 아무 문제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집이었다. 온 가족 갑자기 땅바닥에 나앉으라는 조언과도 같은 말이었다. 왜 답답한지, 왜 공부하라고 하는지 전혀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는 30만 원을 특정계좌로 입금하라고 했다. 신종사기????? 서울 강남에서 있을 오윤섭이라는 부동산 전문가의 강의를 들으러 가잔다. 일주일에 1 강의씩, 3주간 3회 강의를 하는 비용이 30만 원이라고 했다. 재테크에는 관심 없고 오랜 친구와도 같은 선배를 만나는 거라 생각했다. 홀린 듯 30만 원을 입금했다.


강의시간은 퇴근 후 7시부터 9시까지였다. 2시간의 강의를 듣기 위해 1시간 거리 강남을 가야 하는 거였다. 대학원 코스웍을 하고 있었기에 대학원 번역 과제를 잔뜩 싸들고 강남 강의장으로 향했다. 나는 그저 선배님 얼굴을 보기 위함이었다. 얼굴만 보러 가는 데에 30만 원은 과한 돈이라고도 생각했다.


강의장에서 놀란 것은 20대 초년생들이 내 앞에 꽉 찼다는 거였다. 다들 퇴근하고 왔는지, 서류가방에 세미정장 차림이었다.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는 첫 강의 '갭투자'가 시작되었고, 두 번째 주 '역세권 투자',  세 번째 주 '재개발 투자' 강의가 이어졌다.


선배님 옆에 앉아 라디오처럼 강의를 흘려 들었다. 손과 눈은 마케팅 관련 대학원 번역과제를 다. '세상이 말세구나!'라고 생각했다. 진짜 말세 같았다. 피 끊는 청춘들이 퇴근하고 한자리에 모여,, 억억~ 하는 집값을 들으며 강의를 듣고 있다니... 강사가 말하는 집값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집값이었다. 한마디로 몇십 억대의 집이었다. 몇억이 아니라 몇십억.


1강, 갭투자에 대해 들을 때는 '남의  돈으로 돈을 번다고? 만약 자금에 문제가 생기면? 남의 가정까지 파괴하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2강, 역세권에 대해 들을 때는 '역세권을 미리 점쳐서 투자를 한다고? 국가의 철도망 사업이 갑자기 엎어지면? 우리 가족은 땅바닥에 나앉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3강, 재개발 투자에 대해 들었을 때에는 번역과제 거의 끝나갈 때쯤이었다. 여기까지 30만 원을 내고 왔는데, 아무것도 안 듣기에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찰나에 강사가 "통장에 소액이라도 있다면, 새 아파트가 될 재개발 입주권을 사놓으세요. 추천은 하지 않겠습니다. 열거만 할 테니, 직접 임장 하시면서 구입하세요."라고 했다. "이거 꼭 사세요!"라고 찍어주지 않는다니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는 수첩하나를 들고 혼자 주말임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서울 정릉골 재개발, 돈암 6 구역, 청양리 등 비교적 저렴한 곳을 둘러보았고, 경기권에서는 남양주, 구리, 성남, 안양, 인덕원 주변 재개발 일대를 돌아다녔다. 스산한 기운에 무서웠다

  하지만 배운 걸 발로 뛰며 복습하고 싶었고, 망할 '호기심'이란 게 들었다. 호기심이 생기면 알아보고 실행해봐야 한다.


퇴근하면 눈이 쾡~ 해있는 내게 남편이 던졌다.


"재테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때까 탄 사람들이야"

"네가 썩은 빌라를 계약하는 순간, 직장에 사표를 낼 거야"

"자연 속에서 흐르는 강물 보며, 행복하게 애들 키우자"라고 했다.


강의를 듣기 전에는 나도 '재테크 말고도 신경 게 많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만약 아이들이 서울로 대학을 간다면? 갑자기 미국 유학을 가고 싶다고 한다면? 부모로서 "아니다. 천혜 자연환경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에서 흐르는 강물을 보고 살아라"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대학 가면 월세 내는 일이 새로운 어려움이라는 선배들의 하소연도 한몫했다.


수첩 하나 들고 임장을 다닌 결과, 사고 싶은 빌라 1층이 있었다. 사업시행인가 이후의 안전한 단계의 물건이었다. 곧 관리처분 인가를 앞두고 있었다. 경우의 수를 검토하며, 분석을 마친 후 결정했다.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계약금을 걸겠다고 계좌를 달라고 했다.

계약서를 쓰는 날 혼자 운전해서 갔다. 남편은 "드디어 네가 사기를 당하는구나"라고 했고, 친정가족들은 "그런 썩은 빌라는 널리고 널렸다"라고 했다.


계약서를 쓰고, 한 달 후 잔금날에도 부동산에 혼자 갔다. 남편이 여전히 빌라 구입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TV에서만 보던 연예인이 모자를 푹 눌러쓰고 앉아있었다. 여배우였다. 빌라 입주권 주인이라고 했다. "정말 팔고 싶지 않은데 뭐에 홀린 듯 팔고 있다"라고 하소연했다. 음료수컵을 쥔 손 바르르~ 떨고 있었다. '정말 이분, 이 물건 팔고 싶지 않구나'라고 생각했다. 배우 생활 해서 처음 모은 돈으로 어머니께서 사놓으신 거라고도 했다. 그분은 그걸 팔고 과천에 유명한 아파트를 계약한다고 했다. "정말 아침에 안 오려고도 했다. 부동산집 딸이냐. 사기를 당한 기분이다"필요한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녀의 얼굴 보지 않은 채 서류만 내려보았다. "당신은 위약금을 2배 물고 말 일이지만, 저는 신입직원 시절부터 넣은 연금을 해약하고 왔어요." 나도 쓸데없는 말을 던졌다. 그녀가 손을 떨며 부동산 계약서에 장을 찍었다.


이후 내가 구입한 빌라에 거주하던 세입자에게 9개월 간 월세를 받고, 관리처분 인가를 받았다. 바로 세입자는 이사를 나갔고, 빌라는 철거되었다. 일사천리였다.


수도권 전철 4개의 노선이 지나갈 지역에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다. 안전한 단계의 입주권을 미리 사둔 덕에 분양가반값으로 34평 아파트를 갖게 된 것이다. 2,600세대가  완공되지만, 몇 년간 세 주려고 한다. 지금 살고 있는 시골에서 안정적으로 교육을 시킨 후, 초등 둘째의 대학 합격증을 에 쥐고 이사 갈 예정이다.


남편은 나 대신 재개발 총회에 참석 중이다. 표를 쓰지 않고 직장 잘 다니고 있다.  "사이버머니이니 팔아버리자"라는 소리를 가끔 한다. 공동명의이기에 허락 없이는 못 판다.


나는 가끔 부동산 경제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혼자 오윤섭 씨 강의를 들으러 간다. 그분의 강의를 들으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옆동 아파트가 좋아 보이는 막눈은 버릴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급한 서울 출장이 생겼다" 거짓말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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