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 농사, 사부작

by 자급자족

본격적으로 배추와 무를 심지 않았기에 아직 제대로 된 가을 농사는 아니다. 말 그대로 사부작 거려보았다.


한 달 전부터 아파트 재활용장에 텃밭 용품 보관용 플라스틱 서랍장이 나오길 기다렸다. 스티로품 박스에 호미 등을 보관하고 있는데, 자꾸 빗물이 새서 호미가 부식되거나 노끈이 젖어있다. 스티로품 박스를 세 번째 교체하려다가 뒤늦게 플라스틱으로 바꿔보고 싶었다.


그래서 아침 산책 대신 재활용장에 들렀다. 한 네 군데 돌았나? 플라스틱 더미에서 뚜껑 따로, 통 따로 발견했는데, 합체해 보니, 제 짝이 맞는 큰 플라스틱 보관통이다. 다이소에서 5,000원 주고 용기를 구입하면 되지만 버려지는 쓰레기활용하는 편이 낫다 생각한다.


생전 처음, 보물을 찾으러 재활용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창피한 생각도 들었고, 훔치는 사람 같은 느낌도 들었다. 강심장이 필요했다. 뭔가 쓰레기도 그 자리에 둬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실은 3주 전쯤에 농사에 쓸 대야도 하나 주워놨다. 남편이 째려볼까 봐 트렁크에 고이 모셔두었다.


분리수거장에서 플라스틱 통 수거-종묘사 들러 시금치 씨앗과 당근, 깻잎, 상추, 치커리, 대파모종을 구입했다. 작년에 당근씨앗을 파하고, 오매불망 기다는데 싹이 나오지 않았다. 올해는 당근 모종 6개를 1,000원에 구입하여 심어 본다. 우리 집 아이들에게 흙당근을 뽑아보게 하고 싶다.


3주 전쯤 퇴근 후, 밭을 정리하고 퇴비 뿌리고 비닐멀칭을 했다. 두통을 없애고자 한 명상과도 같은 노동이었데, 어느새 가을 농사를 위한 텃밭이 완성되어 있었다. 밭고랑 양쪽으로 풀제거 매트도 깔았다. 봄부터 깔았어야 하는데, 잡초 뽑느라 고생을 두어 번 해보고 이제야 깐다. 비닐멀칭과 잡초매트 설치는 핀고정 형식의 노동이라, 타인의 도움 없이 '홀로 농사'가 가능하다.


구멍 뚫는 도구로 모종 수대로 땅에 구덩이 기, 물 듬뿍 넣기, 물이 흡수되면 흙이랑 모종이랑 동시에 넣고 꾹꾹 눌러주기-시금치도 한 구멍에 씨앗 4-5개 넣고 손으로 흙 모아주기. 종 위로 지지대 4개를 망치로 쾅쾅 박고 차광막을 씌워줬다. 왠지 상추들이 차광막 씌워달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옆텃밭 아주머니께서 우리 집 고구마밭에서 고구마순을 따서 김치를 담아도 되겠냐고 하신다. 언제든 원하시는 만큼 따가시라고 말씀드렸다.


어렸을 때, 구마순 김치는 여름밥상에 자주 올라오던 별미 반찬이었다. 직접 텃밭농사를 해보니, 여름에 반찬으로 반드시 해 먹어야 한다고 아우성이라도 하듯 구마순 줄기가 뻗어다. 옛 어르신들도 그냥 방치하기에는 아까운 식재료였던 거다.


텃밭에 자주 들르지 못하지만, 운동삼아 가끔 출근전이나 퇴근 후에 들러야겠다. 학창 시절, 새벽마다 엄마 따라 밭에 물 주고 등교하던 때나 별반 다름없는 생활이다. 렇게 재미있는 일이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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