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만 따오겠다고 다짐하고 텃밭에 갔다. 농장아주머니께서 왜 이제야 왔냐고 하신다. 무 씨앗을 소분하기로 했는데, 내가 나타나지 않아 걱정하셨단다. 90일 후 수확하는 무인데, 지금 당장 심지 않으면 제때에 수확이 불가하다고 한다. 제때에 저녁식사하긴 글렀다.
생애 처음, 무를 심는 것이기에 병충해가 걱정되었다. 전혀 새로운 세계다. 무 씨앗을 손에 받아 들었다. 어떻게 심는지 몰라서 직관에 맡기기로 했다. 먼저, 구멍 뚫는 기계로 땅에 구멍을 뚫었다. 물을 듬뿍 채웠다. 물이 흡수되고 나서 흙으로 구멍을 메우고 지면을 평평하게 만들었다. 흙속에 무 씨앗을 3개씩 겹치지 않게 배치시켰다. 무씨 위에 흙을 살짝 덮어줬다.
씨앗 구멍 위가 아닌, 옆 비닐 위로 물을 줬다. 구멍 속으로 물이 부드럽게 흘러들어가게 했다. 활대를 박고 한랭사를 씌웠다. 핀으로 땅과 고정시켰다. 처음 한랭사를 씌워본다. 두 달 전부터 사놨는데, 씌우는 데까지 용기가 필요했다. 옆 할아버님의 텃밭 한랭사를 보고 간격과 핀 박는 위치를 터득했다. 새싹이 날지 모르겠다. 싹이 나도 걱정이다. 무, 배추는 농약을 치지 않으면 기르기 힘든 작물이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천연 해충 퇴치제를 연구해 봐야겠다.
시금치 발아가 되었는지 확인했다. 이상 고온으로 한 개도 발아되지 않았다. 찬바람 나기 시작하면 재파종해야겠다. 아무래도 가을쯤 배추, 무, 시금치, 쪽파 등 농산물 가격 폭등이라는 뉴스가 예상된다.
오이, 애호박, 가지, 풋고추, 빨간 고추를 수확했다. 빨간 고추와 가지는 건조기에 건조했다. 고추는 자르지 않고 원상태 그대로 가지와 건조하면 옆집으로 냄새가 이동하는 걸 막을 수 있다.
빨간 고추의 위력을 알아버렸다. 엄마가 그랬듯이, 여름 김치에 잘 말려진 빨간 고추를 갈아 넣었더니, 감칠맛이 배가 되었다. 이제는 빨간 고추를 발견하면 반갑다. 잘 말려서 시어머니께도 갖다 드려야겠다.
고구마밭은 고구마줄기로 무성했다. '한 번 더 고구마줄기 김치?' 상상하다 이내 접어 넣었다. 고구마 넝쿨을 뒤집어줘야 실한 고구마가 자란다고 한다. 옆텃밭까지 고구마순 덩굴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한 번씩 뒤집어 모아줬다. 본의 아니게 남의 밭에 민폐 끼치는 일이 싫다.
차광막 아래서 키우는 상추, 치커리, 깻잎, 당근은 보드랍게 잘 컸다. 폭염일 때는 차광막이 연한 작물을 기르는데 유용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올해 처음 씌워보는데 하나씩 터득해 가는 재미가 크다.
40cm가 넘는 가지를 보고 아들이 깔깔깔 웃는다. 그리고는 사진을 찍어 본인 인스타 스토리에 올린다. 중 3 남아가 인스타 스토리에 텃밭 작물 사진이라니. 남편도 가지 길이에 놀라며 어머니께 갖다 드리자고 한다.
말린 가지는 국물 육수 낼 때 그 어떤 재료보다 감칠맛을 내는 재료다. 가지는 한그루만 심어도 충분한 작물이다. 재작년에 세 그루, 작년에는 두 그루 심었다. 기필코 내년에는 가지 모종은 딱 한 개만 심어야겠다.
직장 경비아저씨께서 심고 남았다며 주신 배추 모종 15개를 베란다에서 환경 적응시키고 있다. "이런 폭염은 처음이지? 나도 처음이야." 이제 아주 조금 선선해졌다. 주말에 심어야겠다. 계란판에 궁채, 시금치, 유채 등의 싹 틔우기 실험도 해봐야겠다.
새로운 지식을 경험으로 알아가는 재미, 참 크다. 평범한 일상에서 작물의 성장을 지켜보는 기쁨 또한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