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재배 실험

by 자급자족

주말이어서 오후 4시까지 공공도서관 열람실에서 문서 퇴고를 했다. 도서관은 툭 터진 밝은 환경이라 어두침침한 스터디카페보다 낫다. 초집중을 해서였는지 뿌듯한 마음으로 귀가했다. 오늘 밥값을 다했기에 그 상으로 텃밭일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직장 건물을 관리하시는 할아버지께서 배추를 심고 남았다며, 22개의 모종을 주셨다. 계획에 없던 배추 재배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폭염으로 일주일간 앞베란다에서 모종의 기온 적응 연습을 시켰다. 누가 알려준 적은 없지만, 좋은 환경의 육모장에서 나온 모종을 그대로 노지 텃밭에 심었다가는 다 죽을 것 같았다.


앞베란다에서 배추모종을 돌봐보니, 집 앞에 텃밭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인생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작물을 돌보고, 퇴근 후 또는 잠들기 전에 작물을 돌보니 농사 자체가 일상이 되고 힐링이었다. 텃밭 딸린 단톡주택을 구입하는 상상을 했다. 집안을 들여다보지 않고, 마당의 텃밭의 흙 상태만 보고 계약서 쓸 태세다.


모종 심을 구덩이를 파고 붕사와 토양 살충제를 소량 넣었다. 밭 만들 때 미리 넣었어야 하는데 쌩초보라 배경지식이 없었다. 종묘사 사장님 말씀을 듣고 뒤늦게라도 바로잡아본다.


오늘의 작업 순서는 구덩이 파기-붕사와 토양살충제 넣기- 물 넣기-구덩이에 1차 흙 채워 지면과 수평 맞추기 - 2차 흙으로 비닐 위를 채우기- 가위나 뾰족한 걸로 모종 사이즈대로 흙의 구멍 내기 -큰 대야에 생막걸리 한 컵과 물 희석하여 모종 뿌리 적신 후 심기-배춧잎이 비닐에 닿지 않게 2차의 흙을 끌어 종 뿌리 주변으로 모아주기, 잎이 덜렁거리지 않게 꾹꾹 눌러 땅에 고정시키기- 활대 박기 - 한랭사 씌우기 했다.


며칠 전 유튜브를 통해 천연 살충제 제조 방법을 익혀뒀다. 배추와 무는 청벌레와 진딧물, 톡톡이 퇴치를 해야 한단다. 농약을 치지 않으면 농사 실패로 이어지기 십상이라고 한다.


천연 살충제를 만들기 위해 약 재료인 고삼을 1시간 여 식힌 것에 마요네즈 한 스푼과 소주잔 한 컵 분량의 식초를 배합했다. 고삼의 쓴맛이 애벌레를 퇴치하고, 식초와 마요네즈가 진딧물 방지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배추 잎과 무 새싹 위에 천연 살충제를 뿌려주었다. 배추 재배는 처음 해보는 것이기에 성공여부를 전혀 예상할 수 없다. 다만, 베란다에서 기온 적응 훈련 기간에 초록색 애벌레 세 마리가 잎을 다 갉아먹는 걸 목격했었다. 그래서 천연 살충제 제조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처음 뵙는 주변 텃밭 아주머니께서, 어둑해졌는데 왜 귀가하지 않느냐며 얼음물을 주셨다. "생애 처음으로 배추와 무를 심었는데, 잘 자랄지 모르겠어요."라고 독백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나는 이미 실패를 예견한 표정이었다. 아주머니께서는 "배추 모종의 몸통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땅에 단단히 고정시켜 줬죠? 만약 그렇다면, 매일 와서 들여다보면 배추가 잘 자랄 거예요"라고 하신다.


너무 바빠서 자주 텃밭에 못 온다. 출근 전 운동 삼아서라도 해충 방제를 해야겠다. 근데 배추가 무사히 다 자라면 어떻게 하지? 배추 재배는 실험일 뿐이고, 김치는 시어머님께서 보내주다. 배추 재배에 성공해도 걱정이다.


경로당에 찾아가 얼굴 모르는 할머님들께 두통씩 나눠드려야 하나? 그러기엔 너무 극내향형인데... 시어머님께 주변 권사님, 집사님 나눠드시라고 하면 되겠다. 일단, 성공하고 걱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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