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이 끝났다. 집 앞 주차장에 도착하고 보니, 저녁 7시 15분이다. 억울하다. 남편은 회식이 있는 날은 자정쯤 들어온다. 죽자고 마신다. 나는 놀고 놀아도 저녁 7시 즈음이다. 집 앞 메가커피에서 최애 '코코넛 커피 아이스' 한잔 마시며 좀 더 늦게 귀가할까 싶었다. 생각해 보니 귀찮다. 지친다.
집에 와서 몸을 옥죄지 않는 옷으로 바꿔 입었다. 소파에 드러누워 브런치 글들을 읽는다. 최고의 휴식이다. 회식보다 낫다.
남편은 아파트 금요 야시장에서 순대와 떡볶이를, 딸은 삼각김밥과 불닭 볶음면을 먹고 있다. 아들은 편의점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있다. 평소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메뉴를 너무도 행복하게 먹는다. 중1 딸은 오늘 저녁 메뉴가 최고의 조합이라며 연신 맛있단다. 고구마줄기 김치가 맛있다더니, 불닭볶음면이 더 맛있나 보다.
지난 회식 이후, 한 달 만의 회식이다. 메뉴는 돼지갈비다. 가족과 자주 가는 고깃집이라 익숙하다. 오늘도 A라는 직원은 오지 않았다. 채식주의자인데 지난번 메뉴는 삼겹살, 오늘은 돼지갈비, 못 올만하다.
동료들이 행복해 보인다. 회식 담당자가 스크래치 뽑기 종이 하나씩 나눠줬다. 로또 복권도 두장씩 줬다. 동료들은 만약 로또에 당첨되면 어떻게 할 것인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웃음꽃을 피운다.
30대 새댁은 절대 로또당첨 사실을 남편에게 발설하지 않을 것이며 친정어머니께 전부 드리고 당첨금의 20%만 받겠다고 한다. 20대 초반의 미혼 처자는 가족과 1/N씩 나눠갔겠다고 한다. 60대 여선배는 남편에게 40% 떼어주고 본인은 60%를 갖겠단다. 다들 가족애가 대단하다. 세분 다 다음날부터 더 이상 직장은 다니지 않겠다고 한다. 미리 작별인사를 한다.
내게도 의견을 묻길래. 1등 해봐야 제대로 된 집 한 채도 못 살 돈이니, 수도권에 땅을 사두고 다니던 직장 조용히 다니겠다고 했다.
다들 즐거운(?) 상상으로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슬슬 창피해지기 시작한다. 목소리를 낮추자는 내 제스처에도 웃긴가 보다. 더 크게 깔깔거린다. 그러고 보니 회식 때 매번 복권을 받는다. 시끌벅적한 상상도 같다. 한 번도 당첨된 적은 없다.
얼마 전부터 도서관 앞 복권샵이 눈에 띄었다. 현금으로만 구매해야 한다기에 쳐다만 봤다. 회식 때 무료 로또를 받았으니, 당분간 로또를 사보고 싶은 호기심은 안 생기겠다.
직장동료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자세히 본다. 콜라 마셨는데 취한다. 수영장 안에서 수영하는 느낌이다. 물속에서 웅성웅성 물소리와 음성이 들리는데, 정확히 무슨 대화인지 또렷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웅웅......
그 와중에 안정감도 느낀다. 내가 이 그룹에 소속해 일하고 있었구나. 다들 직장에서, 가정에서 제 노릇 하며 지내다 한 달 만에 보는 얼굴이다. 저 사람은 저렇게 생겼구나. 저 사람은 오늘 이 자리가 너무도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구나.
20대 미혼 때는 직장에서 일하다 깜빡 퇴근시간을 잊곤 했었다. 새벽 1시까지 일한 적도 있고, 동료 선배와 새벽 5시까지 회의하며 일한 적도 있다. 직장 근처에 사는 상사가 자정 넘어서도 사무실에 불이 켜져서 오신 적도 있다. 왜 귀가하지 않느냐고 물으셨었다. 그때는 일이 최우선이었다.
지금은 '뭣이 중헌디?' 싶다. 우리 집 아이들이 가장 중허다. 직장은 생계수단일 뿐. 더 이상 성장하고 싶지 않기에 직장이 성장의 장소로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받은 만큼, 주어진 시간 안에서 조직의 이익을 위해 내 몫 하다 퇴근하면 된다 생각한다.
직장맘의 평범한 회식풍경 한 꼭지를 남기고 지나간다. 이번 주말도 농부와 백수로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