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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 씌우러 텃밭

한겨울에도 텃밭 경작해 보기 실험

by 자급자족

얼마 전 양파를 심고 있는데 주변 텃밭 할머니께서 비닐을 씌워주라고 신신 당부하셨다. 소 인사는 큰소리로 건네지만, 내향형이라 혼자 노동하는 걸 즐긴다. 한 번씩 그렇게 농사법을 알려주려는 어르신들이 계신.


할머니께서는 작년 늦가을에 봄동과 상추를 심고 활대를 박고 비닐을 씌우셨다고 한다. 비닐을 여는 게 귀찮아 폭설이 내린 한겨울에도 그냥 뒀다고 하셨다. 그런데 2월에 비닐을 열어보고 깜짝 놀라셨단다. 월동한 봄동과 상추가 싱싱하게 잘 자라서 한겨울에 달짝지근한 야채를 드셨다고 한다. 격양된 목소리로 비닐을 씌우라고 조언하셨다.


비닐은 없고 한파는 3일간 지속되었다. 퇴근길에 종묘사에 들러 잘라서 파는 비닐을 10미터만 구입하려 했다. 가격은 약 15000원 정도 했다. 내 기준에 비쌌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반값으로 훨씬 저렴해서 온라인으로 구입했다.


퇴근 후에 비닐하우스 제작 재료를 들고 텃밭에 갔다. 어제 조언해 주신 할머의 밭 비닐터널이 온 데 간데없다. 옆텃밭 할아버지 밭에도 얼마 전까지 비닐 터널이 있었는데 감쪽같이 사라졌다. 농사를 오래 지으신 분들은 그날그날 기온을 보고 대처하는 듯하다.


직장맘인 나는 텃밭에 자주 올 수 없어 활대를 간격 맞춰 꼽고 비닐을 씌운 후 양쪽 측면은 빨래집게로 기가 통하게 걷어올렸다. 배운 적은 없지만 주변 어르신들 텃밭에서 본 것 같다.


올해 날씨가 참 이상하다. 여름에 이상고온인 건 이제 자연스럽다. 가을장마에 일찍 영하권으로 떨어진 것 등등. 이제 외부 기온에 농사운을 맡기기보다, 기온을 컨트롤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야겠다.


무는 매우 잘 자라고 있었다. 달큰한 가을무를 시어머니께 가져다 드릴 생각에 설렌다. 배추는 아직 결구가 안되었다. 꽃봉오리처럼 오므라들어야 하는데 아직이다. 다행히 정중앙 고갱이에 한 마리씩 앉아있던 청벌레는 추위 덕에 사라졌다. 배추는 참 기르기 어려운 작물이다.


씨앗가게에서 무료로 준 열무를 지난주에 파종해 뒀다. 큰 실수를 한듯하다. 가을 스킵하고 겨울이 올 줄 몰랐다. 열무 구역 미니 비닐터널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만들어줬다. 부추도 퇴비를 듬뿍 넣어주고, 봄에 실패한 궁채는 가을에도 실패하겠다. 내년봄에는 궁채의 특성을 공부해서 이해한 후 성장 환경을 맞춰줘야겠다.


홍산마늘을 심었는데 아직 싹이 나오기 전이다. 아니... 싹이 나올까 싶다. 양파도 추위에 잘 견디고 있다. 마늘싹이 나면 양파 마늘 위에 춥지 말라고 왕겨를 뿌려주려고 한다. 그리고 비닐이 아닌 흰 부직포를 덮고, 폭설 전에는 비닐을 덧씌워 줄 예정이다.


겨울 월동 시금치, 월동상추, 가랏씨(시나나빠), 봄동 배추 씨앗을 뿌렸다. 한파 시작할 때 뿌렸으니 초보 인증이다. 월동 작물도 씨앗을 일찍 뿌리고 한파에 견딜 정도로 몸통을 키워놔야 함을 깨달았다. 예쁘게 발아가 되었다. 비닐로 정성스럽게 씌워두었다. 세상에 싹을 틔우게 했으니, 따뜻하게 잘 자라도록 돌볼 의무가 있다.


콜라비도 잘 자라고 있었다. 처음 키워보는 거라 언제 수확하는지 모른다. 배추는 서리 맞아도 얼고 녹기를 반복하는 작물이라고 한다. 반면, 무는 서리 맞으면 못 먹는단다. 콜라비도 무와 비슷한 뿌리 작물이기에 서리 내리기 전에 수확해야겠다. 오이도 열매를 맺었지만 동해를 입기 좋겠다. 초보여도 이리 초보일 수 없다. 오이는 더 일찍 심었어야 했다. 어린 오이를 우구적우구적 먹었는데 배고픔도 갈증도 달랠 수 있었다.


10평 텃밭을 스마트하게 운영하려면 더 지식을 습득해 나가야겠다. 해를 거듭할수록 나아지길 바란다. 경험을 통해 배운다는 건 참 신나는 일이다. 행동으로 배우는 것만큼 위로를 주는 취미가 없다. 지금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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