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

by 자급자족

손을 오므렸다 폈다를 반복하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생각해 보니, 직장에서 하루 종일 움직였다. 그중 손가락을 가장 많이 움직인 듯하다. 물건을 이동하고 정리하고 청소하고 쉴 새 없이 손을 놀렸다. 퉁퉁 부르텄다.


퇴근하고 텃밭에서 냉해 입은 오이줄기를 뽑아 버렸다. 올해 텃밭 농사에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진입하는 그 시기가 가을겨울 농사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다. 무, 배추 파종시기에 다른 작물의 파종도 필요하다. 난 바쁘기도 했고 전혀 지식이 없어 늦었다.


배추의 부직포 이불을 벗겨주고 칼슘제를 잎면시비했다. 배추는 얼고 녹고를 반복해도 괜찮다고 하니 이불은 안 씌워줄 생각이다. 추는 아직 예쁘게 오므라지는 결구가 되지 않았다. 다음 프로세스를 전혀 모르기에 순리를 기다릴 뿐이다.


마늘의 새순이 관찰된다. 상추, 봄동배추, 뚱채, 가랏나물, 시금치 새싹을 확인했다. 양파도 살아있다. 열무씨는 비닐터널 안에서 봄인 줄 알고 싹을 틔웠다.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과연 엄동설한에도 잘 자랄까 싶다. 겨울 초입에 싹을 틔워버리다니 큰 실수를 한 듯하다.


솎은 무청을 들고 귀가하니 남편이 한번 쳐다본다. 환청이 들린다. '오늘도 퇴근 후 텃밭 간 거야?' 취미가 다른 사람과 살고 있다.


얼마 전 TV에서 텃밭 일구는 아낙의 인터뷰가 나왔다. "아휴 텃밭 농사 누가 시켜서는 절대 못하죠. 내가 손수 길러서 해 먹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이고 신나는 일이게요. 재미있어서 하는 일이에요." 편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맞아. 맞아" 혼잣말을 한다. TV속 그녀가 내대신 인터뷰를 해줬다.


무청을 여러 번 씻고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데쳤다. 데친 후에도 여러 번 헹궜다. 그다음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무를 재배하는 것도 처음이지만 무청을 시래기로 만든 것도 처음이다.


그제야 뭔가 솔루션을 줄까 싶어 일곱 살 많은 남편에게 실토한다. "올해 무농사가 참 잘 되었어. 정성스럽게 길러 서울 시어머니께 가져다 드리고 싶어. 시골에서 사셨던 분이니 유기농으로 기른 것 드시라고., 무청을 솎아줘야 무가 달고 튼실하게 잘 자란대. 무청을 삶았는데 그다음은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어. 인터넷 찾아보니 시래기된장국도 끓여 먹는다고 하고 시래기무침으로도 먹는다는데... 모르겠어."


남편도 엄마가 해준 것만 먹어봐서 모르겠단다. 우린 엄마가 해준 것만 먹어본 "어른이"이다.


식재료가 냉동실로 들어가는 건 원치 않는다. 그렇다고 냉장고에 넣기에도 양이 많다. 시래기를 송송 썰어 구수한 시래기 된장국을 끓이거나 초벌양념해서 궁중팬에 시래기 볶음을 자작하게 한 후 직장 도시락으 싸가는 방법이 있겠다. 애들도 먹어주면 좋고 아님 말고.


팔순이 넘으신 시어머니께 카톡으로 여쭤보니 물에 오래 담갔다가 된장국이나 볶음으로 해먹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