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귀하는 학위수여 대상자로 2월 23일 졸업식에 참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자가 자주 왔다. 참석하지 않을 예정이었기에 스킵했다.
"식"이란 게 어색하다. 결혼"식"도 하지 않을까 하다 어쩔 수 없이 했다. 단, 최소한으로 진행시켰다. 직장에서 대여하는 결혼식장을 100만 원에 빌리기. 한복 4만 원에 대여. 결혼반지는 로이드에서 14만 원짜리 큐빅 반지 구입하기. 스냅사진과 앨범은 NO., 결혼식 총비용 약 140만 원이 들었다. 남편이 신혼여행지로 호주를 알아보고 있었다. 내 제안으로 제주도로 변경했다. "식"에 딸린 모든 절차를 간소화하기를 원했다. 이러다가 내 장례"식"도 스킵할판이다.
스팸 문자와 같았던 "졸업식 참석 문자"를 아들이 보게 되었다. 꼭 참석하고 싶어 했다. 엄마 졸업식에 가보고 싶단다. 한참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예비고1 아들의 부탁이라 '졸업식에 한번 가봐?'란 생각이 지난 목요일에서야 들었다. 석사 때 졸업식에 왜 가지 않냐는 동기들에게 "어차피 박사 때 참석할 건데 뭐"하며 농담을 건넸었다. 농담이 코앞에 다가왔다. 졸업식은 월요일, 3일 남았다. 졸업식 가운이 없다.
학교에서 안내한 가운 대여업체에 전화하니, "모두 소진되었습니다"라는 설명을 들었다. 소진, 대여로 없어졌다는 말인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는 말인가. 계열별로 가운의 띠 색깔이 있는데, 내 전공계열은 백색으로 두 업체 모두 여유분이 없다고 했다. 뭐.. 가운이 없어서 졸업식에 못 가게 되었다. 핑계가 생겼다.
겨우 경기도 이천 면소재지에 위치한 가운제작 및 대여 업체를 찾아 직접 다녀왔다. 늦게 참석 결정한 벌이다. 여유분을 두지 않는 가운업체는 마케팅 전략인가?
졸업식 당일, 남편은 중요한 회의 진행이 있어 따로 출발하기로 했다. 아들과 딸의 학원 공백 여부를 확인하고, 직장 휴가 등의 절차를 밟았다. 그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졸업식 참석을 취소하려 했다.
이제 졸업식에 가기만 하면 되는데 싱숭생숭하다. 분명 입학동기가 나 포함 셋이었는데, 중간에 휴학을 하고 모두 사라졌다. 가운과 어색한 빵모자를 들고 애 둘을 자가용에 태워 출발했다.
가는 길에 여기저기 자동차들의 접촉사고가 터졌다. 가다 서다 반복한다. 잘 되었다. 그냥 졸업식장은 가지 않고 밖에서 셀프 졸업식 및 촬영을 하고 돌아올까도 싶었다.
10분 지각하여 도착하고 보니, 축사 등으로 아직 본격적 졸업식이 거행되고 있지 않았다. 아는 사람 하나 없어 정말 뻘쭘하지만, 타포린백에서 가운을 급히 빼입고, 식장 중앙의 띠 두른 사람들 속에 앉았다.(식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며)
식이 끝나고 사진 한방 남긴 후 준비해 간 타포린백에 재빠르게 가운과 빵모자를 넣었다. 휴~ 끝났다. 남편은 이어서 중요한 회의를 진행하기 위해 다시 직장에 갔고, 아이들과 나는 학교 문구점에 들러 필통을 샀다. 학교 로고가 없거나 최소한으로 붙은 디자인을 고르고, CU 편의점에 들러 각자 먹고 싶은 삼각김밥을 사서 돌아왔다. 아들 영어학원 시험이 있어 바로 시험준비를 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졸업식에 참석한 거다.
운전하며 독백을 했다. "앞으로 엄마는 신촌 쪽으로는 안 온다" 아들이 웃으며, "엄마! 신촌 또 와야 해. 내 대학 졸업식 참석은 해야지"한다. 신촌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싶은가 보다. 서로 웃고 말았다.
요즘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한 고민이 크다. 끊임없이 고민한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직장생활을 했고, 아이를 낳아 회복 기간 이외에는 휴직해 본 적 없다. 태어난 지 91일 된 아이를 베이비 시터집에 맡기고 출근했었다. 그런데 올해 3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계획에 없던 생애 첫 휴직기를 갖게 되었다. 1년간 매달 월급도 나온다고 한다.
이제 아이를 키워볼까 했더니,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기숙사 입소를 했다. 중2 딸만 무한 공부 케어(간섭)를 받게 생겼다.
대충 힐링하면서 1년을 보내도 누가 뭐라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마냥 쉬는 건 재미가 없다. 직장과 병행하며 박사과정을 밟느라 매일밤 공부했다. 그런데 갑자기 손에서 공부가 떠났다. 그리고 1년간 여유시간이 내게 주어졌다. 어떻게 일상을 재단해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한 달 이상 고민한다는 건 뭔가 중요한 결정이기 때문 일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답은 찾아가는 과정이기에 그냥 그렇게 두고, 일단 건강한 신체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집 앞 체육문화센터에서 화, 목요일 밤 9시~10시에 이루어지는 밴드코어반을 2개월째 수강 중이다. 한 달 수강료가 17,500원이다. 강사의 질은 국내 최상이다. 운동이 몸에 맞는 듯하여 월수금 밤시간에 이루어지는 점핑 피트니스에 추가 등록했다. 한 달 수강료 3만 원이다. 47,500원으로 일단 건강을 챙길 예정이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도전이 끝나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시간에 쫓기지 않고 마음껏 운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 집 아이들의 학원숙제를 꼼꼼히 체크해 줄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