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4일 차

by 자급자족

워커홀릭이었던 사람은 차라리 직장에서 쉬는 게 낫겠다. 등교하는 중학생 딸과 갈림길에서 헤어져 메가커피로 왔다. 할메가커피를 시켜놓고 멍하니 앉아있다.


하.. 갈 곳도 없고 부르는 곳도 없구나. 해야 할 일은 많다. 교수님께서 단행본과 학회 논문을 쓰라고 하셨다. 교수님의 마지막 메일에 그렇게 적혀있지만, 데드라인을 안 주셨기에 메일을 열지 않는다.


23년간 쉬지 않고 일했다. 매일 아침 회색빛으로 출근했고, 매일 밤 공부했다. 그래서 생애 첫 1년의 휴직기간, 열심히 살고 싶지 않다. 그러나 휴직 3일이 지났는데, 멘붕이다. 하.... 누가 보면 이게 행복이라 하겠지? 멈춰있는 시간은 내게 행복이 아니다.


이틀 전에는 당근어플을 보다가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학원 청소 아르바이트를 발견했다. 청소 4시간에 5만 원어치의 일회성 노동이 존재한다. 학원 확장이전으로 인테리어공사를 했고, 학생들의 첫 등원 전까지, 청소를 해주면 되는 거라고 적혀있다. 자가용으로 10분 거리의 옆도시, 한 번도 지나쳐보지 못한 곳이다.


4시간의 일회성 노동? 머리도 복잡한데 해보고 싶어졌다. 몸을 미친 듯 움직이면 생각도 정지할 것 같았다. 대학 때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학비, 기숙사비, 외국어 교육원비, 생활비를 벌었다.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토사물을 치우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너무 뛰어다녀서 발바닥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지만, "살아있음"을 제대로 느꼈다.


당근알바에 손을 들었다.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할 자신이 있는 주부"라고 한 줄 소개 지원서를 썼다. 7명이 지원했고 내게 연락이 왔다. 그동안 쌓아 올린 경력과 자격은 필요 없. 중학생 딸은 캄보디아로 잡혀가는 거 아니냐며 걱정했다.


고무장갑, 대걸레, 거칠어져 못쓰는 수건을 잘라서 가지고 갔다. 내 또래 여자원장은 나를 "이모님"이라고 불렀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호칭이었다. 다니고 있는 직장의 화장실 청소노동자분께 동료들이 "이모님~"이라 했고, 회식자리에서 고기를 더 달라며 동료들이 "이모님~"이라 불렀다. "이모님~" 새삼 이모님이라고 불릴 나이가 되었나 했다. 익숙하지 않은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원장은 같은 건물의 다른 층에서 교재연구를 하고, 나는 청소를 시작했다. 창고로 썼었다는 공간의 외관은 화이트톤으로 인테리어를 했지만, 안은 썩어있었다. 창틀에는 30년은 돼 보이는 흙먼지가 두꺼운 흙덩어리가 되어있었다. 창문에 몇십 년 전, 뽁뽁이를 붙였는지, 태양열에 눌어붙어있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초등학생 때 쓰던 거친 미니 빗자루를 챙기길 잘했다. 입을 꾹 다문채 창틀 흙덩이를 긁어내고, 창문에 눌어붙은 뽁뽁이를 제거했다. 미세먼지와 미세플라스틱이 마구 떨어졌다. 청소하시는 분들에게는 보호 안경과 방진마스크, 손보호 장갑이 필수겠다는 생각을 했다.


25평이라고 했는데, 빈 공간이어서였는지 40평은 넘어 보였다. 크고 작은 교실 네 곳의 정리와 청소를 해치워나갔다. 바닥에 떨어진 페인트자국과 스티커 자국 제거하기, 창틀에 젖은 수건을 끼우고 송곳으로 꾹 잡고 남은 먼지자국 없애기. 속이 시원했다.


청소하는 동안 "내가 확장 이전을 앞둔 이 학원의 원장"이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노동이 즐거웠고, 방해 없이 하나씩 도장깨는 작업이 적성에 딱 맞았다. 그러고 보면 어떤 일에서든 빙의를 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던 내가 그 일의 주인이라는 입장으로 임했. 일을 시킨 주체를 잊어버리고 푹 빠져서 했다. 본질은 그대로고 환경만 바뀐다.


청소를 계속하고 싶은데, 원장이 제발 그만하라고 부탁했다. 5만 원이 아닌 10만 원을 봉투에 담아줬다. 소가 끝나자, 조용히 다른 층으로 가자고 한다. 딸 말대로 '캄보디아로 끌려가는 것인가'


원장은 다른 층의 작은 교실 하나를 보여 주며, 작은 교실에서 위층 전체로 학원을 확장 이전하는 거라 했다. 그리고는 매주 주말,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주 1회 청소를 해주면 회당 10만 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한 달 4회 청소에 40만 원.


1일 노동체험으로 생각을 비우러 왔다가 채용되게 생겼다. 이미 직장인이라 을 할 수 없다고 답했다. 장은 임금을 금봉투로 드리겠고 청소시간도 알아서 정하면 된다고 탁한다. 청소에 너무 심취했었나 보다.


업무 외에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새벽 아르바이트 경험을 쌓았었다. 주로 연구논문 작성과 데이터 분석 아르바이트였다. 문체부, 기재부, 교육부, 시청 등에서 의뢰하는 공동연구물을 작성하거나 재단 등에서 의뢰 들어오는 매뉴얼 집필 아르바이트를 했다. 45장짜리 보고서를 집필하고 150만 원을 받았다. 6개월짜리 연구프로젝트에 참여하며 500만 원을 거나 매달 70만 원을 고서 작성 아르바이트비로 입금받았다. 날은 학원 청소노동으로 10만 원을 받았다.


20년 뒤쯤 퇴직을 하면서 모든 경력과 타이틀이 사라지고, 내 이름 석자만 남는다면? 쌩노동으로 돈을 버는 건 어려워 보였다. 늙을 것이고 감각은 무뎌질 것이다. 예금으로 00억을 넣어두고 금융소득을 얻는 것보다 매월 100만 원의 월급을 받는 쪽으로 노후를 준비하는 게 최고의 대비라 들었다. 노인들이 그렇게 임금을 받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기력이 떨어져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이 끝나자마자 띠동갑 친정오빠와 시어머니 그날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어머니도 친정오빠도 "너를 누가 말리냐"며 크게 웃으신다.


휴직 4일 차, 노동의 풍경을 적고 간다. 노동을 하며 느낀 건, 진정한 부자는 시간부자라는 것이다. 자기 시간을 스스로 경영해서 쓸 수 있다면 진정한 부자다. 직장을 다니더라도 자기 시간을 자유롭게 컨트롤하며 쓸 수 있는 사람은 부자다. 고용당한 입장이기에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다.


핸드폰으로 브런치에 쪽글을 쓰다 보니, 옆테이블에 엄마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어느새 6명의 집단이 되어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혀끝으로 교장을 몇 번은 갈아치우고, 질 낮은 방과 후 교실의 퀄리티에 혈변을 토한다. 민원편지의 행간을 함께 바꾸기도 한다. 덕분에 우리 딸의 체육선생님 성향도 알게 되었다. 이런 세계도 있었구나.


시끄럽고 귀가 아파 집 대청소나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