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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바람난 줄 알았어.

by 자급자족

내 핸드폰에 저장된 가족의 이름은


1. 남편 : 좋아하는 오빠

2. 아들 : 첫 보물

3. 딸 : 존경하는 딸


이다.


원래 남편의 저장명은 "남편 ○○○"이었다. 갑자기 교통사고가 날 경우, 목격자가 유일한 보자인 남편에게 전화해 줄 것 같아서였다.


지극히 T다.


없는 애정이라도 상기시켜 보고자 [좋아하는 오빠] 편을 저장해 뒀다.


[(한 때) 좋아하는(던) 오빠],


어제 후에 등 딸이 옆에 있었다. 퇴근하며 저녁에 뭐 먹을 거냐는 남편의 전화가 왔다.


발신자가 "좋아하는 오빠"였다. 딸이 내 핸드폰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춘다.


(시간이 흐르고)



저녁식사를 하다 딸이 입을 뗀다.


딸 : 아까 엄마가 바람난 줄 알았어.


나 : 바람??


딸 : 전화가 왔는데 "좋아하는 오빠"라고 떠서. 모르는 척했어. 근데 아빠목소리여서 안심했어.


나 : 엄마가 바람이 났다고 생각했으면 바로 '이거 뭐냐'라고 따지듯 물었어야지. 그게 우리 가족을 지키는 거지.


딸 : 엄마가 바람이 났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했어. 엄마가 무안할까 봐. 의리 지키려고 했어.


나 : 만약 아빠에게 어느 날 "사랑하는 그녀"게 전화가 온다면, 모르는 척할 거야?


딸 : 아니, 엄마에게 '아빠 바람났다'라고 바로 말할 거야.


나 : 왜???


딸 : 엄마가 바람났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아빠가 바람이 났다면 이유 없이 그냥 필 것 같아. 그래서 엄마에게 발견 즉시 '아빠의 바람'을 알릴 거야. 엄마라면 우리 가족을 다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 같아서.


남편이 밥 먹으며 둘을 번갈아 흘겨본다.



포복절도했다.



좋아하는(던) 오빠는 금 이 순간, 소파에 등을 기대어 인강을 들으며, 수학문제를 푼다. 심심한가 보다. 미친 듯 푼다. 무음카메라로 등 뒤에서 몰래 찍어본다. 메리 크리스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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