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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대표 Feb 16. 2020

누구나, 그러나 아무나

나이가 들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직장생활 때문에 바쁘고, 결혼한 친구들은 가족이 있고, 게다가 사는 건 비슷비슷하다 보니 흔쾌히 지갑을 꺼내서 계산하는 게 우정인 것 처럼 느껴지는 친구들과의 만남이 부담스럽다고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주변 사람들과 멀어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에 변화가 찾아온 것은 결혼하고 난 뒤에 찾아온 여러가지 변화 때문이었다.


얼마전에 있었던 일이다. 간만에 어느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궁금한게 있는데요..."


지난 명절 때, 그가 살고 있는 지역에 출장을 갈 일이 있었다. 됨됨이가 좋아보이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딱히 밉보일 행동을 하던 사람도 아니었기에, 간만에 만나 이야기라도 나눌겸 연락을 했었다. 그러나 출장차 방문했는데 차나 한 잔 하자는 나의 안부메세지에 "이따 연락드릴게요." 라고 답장을 하고는 연락이 없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고, 메세지도 없었다. 결국 저녁까지 기다리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도 연락이 없다가, 거의 반 년 만에 연락이 온 것이었다. 그렇게 연락이 와서 한다는 소리가 고작 "궁금한 게 있는데요."였다. 어쨌거나 나는 도움이 될 만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고, 저녁에 근처에 갈 일이 있는데 시간이 괜찮으시면 차나 한 잔 하자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는 "이따 저녁에 연락드릴게요."라고 이야기했고, 역시 저녁에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사실 나는 그가 살고 있는 지역에 갈 계획이 없었다. 그저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는 약속을 소홀히 생각했고, 사람을 얻는 것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그러나 어떤 측면에서도 존경할 만한 부분을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 뒤로 나는 그 사람과의 인연을 정리했다. 필요할 때만 도움을 구하는,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손해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에게서 배울 것은 한정되어 있기 마련이다.

비슷한 경우가 또 있었다. 수년 전, 직장생활을 할 때 친하게 지내던 40대 여자 과장님이 있었다. 성격이 밝고 활기차서 가까이 지냈다. 좋은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지낸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상대방으로 하여금 거리를 두게 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 과장님은 사람을 무척 쉽게 과소평가하는 언행이 몸에 배여있었다. 그 분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치 내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 분은 습관적으로 상대방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꺼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1. 도대체 왜 그래?

2. 넌 애가 왜 그러니?

3. 그래, 내 말이 그 말이잖아. 

4. 그러니까 그런 행동을 왜 하냐고. 

4. 그래서 네가 안되는 거야. 내가 몇 번이나 이야기했잖아.


당시엔 왜 내가 그런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어야 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표현들이 유쾌하진 않았지만, 한 편으로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살아온 날이 나보다 많은 사람의 충고는 확실히 마음에 새겨둘 만한 지혜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좋게 좋게 생각했다. 


1. 성격이 좀 예민해서 그런거겠지.

2. 내가 실수한 것도 있으니까, 저렇게 반응하는거겠지.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내 행동과 말투가 그 과장님을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쉽게 흥분하고, 쉽게 짜증내고, 쉽게 상대방을 과소평가하는 말투가 내 입에서 튀어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회사에서 퇴사하자마자 나는 휴대폰에서 그 과장님의 연락처를 삭제했고 SNS에서도 차단시켜버렸다. 그에게서는 상대방을 과소평가하는 자세 이외에 어떤 것도 얻을 수 없었던 셈이다. 


함께 술마시고 모여다니면서 세상 한탄이나 하는 무리는 패거리라고 이야기하고, 함께 꿈과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친구라고 이야기한다. 지금 친구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친구들의 모습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Don't try to change your friends), 친구를 바꿔라(change your friends). 


사회적으로 거대한 부를 축적하면서 신뢰할 만한 명성을 쌓은 어느 사업가의 강연에서, 나는 친구를 바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평균은 곧 내 모습이 되고, 그들의 평균이 높을수록 내 모습이 달라지고 평균도 높아진다. 나는 그동안 어떤 사람들과 친분을 맺어왔는지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친구親舊의 사전적 의미는 가깝게 오랫동안 사귄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이, 성별, 국적을 불문하고 가깝게 오랫동안 마음을 함께 나눈 사람들을 친구라고 한다. 학창시절엔 나이가 같은 사람이 친구였다. 분명히 별 볼일 없는 사람인데도, 성격이나 인성과 같은 측면에서 봤을 때 그리 가깝게 지내고 싶지 않은데도 어쩔 수 없이 친구가 되어야 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친구가 아니다. 나이가 같은 사람, 정부와 국가, 헤어진 여자친구나 남자친구 흉을 보면서 하루하루 한탄으로 허송세월을 보내는 사람만이 친구는 아니다. 친구들 중에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 친구도 있을 수 있고, 20살 혹은 그보다 훨신 나이가 많은 친구도 생길 수 있다. 대신 그 친구들은 패거리로서의 가치를 가지기보단, 꿈과 비전을 공유하는 친구로서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


언젠가 가깝게 지내는 지인 내외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저희도 어떤 면에서는 준우씨와 친구입니다."


성공한 사업가, 겸손한 성품, 일반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그 분들의 삶은 무척 여유롭고 품위가 있었다. 하지만 나보다 20살이나 나이가 많은 분들이었고,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있었다. 그 분들은 나와의 약속시간을 어긴 적이 거의 없었고, 항상 나보다 10분 일찍 도착해서 나를 기다려주시곤 했다. 그런 모습에서 나는 감히 그분들의 친구라고 이야기할 수 없었고, 그저 <존경합니다.>라는 말로 그 분들에 대한 예우를 지켰다. 나보다 앞서나가는 친구에 대한 최소한의 칭찬이었던 셈이다. 


물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만이 진정한 친구라는 말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기본적인 성품, 사람됨됨이다. 언젠가 막노동 현장에서 알게 된 지인에게 차나 한 잔 하자고 이야기하며 약속을 잡았다. 그는 막노동 현장에서도 끊임 없이 공부했고, 밝은 얼굴로 일을 했다. 그랬던 그가 약속 당일 아침에 연락이 와서 "급한 사정이 생겨서 안되겠어요. 미안합니다."하고 이야기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혹 실례가 안되면, 수요일 오후 8시에 같은 장소에서 만나는 건 어떤가요? 그 때는 어떤 일이 있어도 시간 비워둘게요."


누구나 인간으로서의 품위가 있고,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자격이 있다. 그러나 아무나 가치있는 인생이나 품위 있는 인생을 사는 건 아니다. 가정과 학교, 친구, 성장과정에서 경험한 수많은 변수들을 통해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만들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담대하고 긍정적이며 매사에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매사에 불평 불만을 일삼고, 약속을 쉽게 깨트리며, 훌륭한 사업계획에 코웃음치고 비웃음을 던진다. 그들에게 그런 가치관과 성격이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사회적 변수와 환경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 중에는 가족과 사회로 인해 원치 않는 인생을 살게 된 것에 앙심과 한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저들은 풍족한 집안에서 풍족한 유년시절을 보냈는데 왜 내 인생은 이래야만 하는가, 하는 식의 좌절감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될 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나>와 <아무나>가 구별되어야 한다. 


사람을 얻는 것은 중요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 인생 속에는 절망도 있고, 소망도 있고, 기쁨도 있다. 사람마다 가진 맛이 있다. 이처럼 누구나 자신들의 맛을 갖고 있다. 하지만 첫째 아들이 태어나면서, 나는 아무나 만나지 않기로 결심했다.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며, 누구와 함께 꿈과 비전을 공유할 것인지에 따라 내 인생이 무척 다양한 폭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나 꿈과 비전을 가진 게 아니다. 긍정적 사고방식, 쾌활한 성격, 성공에 대한 집념, 꿈을 추구하며 하루하루 성장하기로 결단한 사람들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대개 태어나면서부터 선택된 리더에 가깝다. 이처럼 인생에 있어서 나와 같은 방향성을 가진 사람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맺고 관계를 맺는 게 아무나 만나는 것보다 훨씬 더 유익하고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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