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에 쭈그려 앉아서 티비를 보는 아저씨는 미간에 커다란 점이 하나 있었다. 늘 졸린 눈으로 아이들을 쳐다보는 아저씨는 민재가 뛰어들어오자 게슴츠레한 눈으로 "뭐사러 왔노?"하고 물었다.
"황금딱지 있어요?"
"저 앞에 있다."
황금딱지는 5개 정도 남아 있었다. 민재는 주머니속의 지폐와 동전을 꺼내서 헤아려보았다. 만 삼백원, 황금딱지와 츄파춥스를 사면 딱 맞았다. 하지만 쉬는 시간에 사탕을 먹기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 뭘 사야 할 지 잠시 고민했다. 주인아저씨는 민재가 황금딱지를 들고 냅다 도망가지나 않을까 걱정되는지 티비를 보면서도 연신 민재쪽을 흘깃거렸다.
아이들의 말에 따르면, 황금딱지는 일반 딱지처럼 세게 쳐서는 넘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어린 아기를 달래듯이, 가운데 살짝 솟아있는 부분을 슬쩍 건들듯이 쳐야 반동에 의해서 딱지가 넘어간다고 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가설이었다. 이제까지 일반딱지로 황금딱지를 넘긴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대왕딱지에 싸구려 황금빛 물감을 칠해놓은 고무딱지에 불과했건만, 어느새 아이들에게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요술방망이와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황금딱지만 있으면, 반 아이들의 모든 딱지를 다 딸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민재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여기요.”
민재는 주머니에서 300원을 뺀 나머지를 주인아저씨에게 내밀었다. 아저씨는 돈을 세어본 후 가라는 손짓을 했다. 민재는 주머니에 황금딱지를 쑤셔넣고 서둘러 학교로 달려갔다. 얼마 전 1학년 남자아이가 학교로 오는 길에 문방구 앞에서 차에 치여 죽은 것을 봤다. 민재는 학교로 오는 길에 그 장면을 목격했다. 그렇게 많은 피를 본 것은 처음이었고, 심장이 그렇게 빨리 뛴 것도, 아빠에게 엄마가 맞는 것을 봤을 때 이후로 두번째였다. 아이는 머리에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고,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아줌마가 달려와서 아이를 부둥켜안은 채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할머니는 아침마다 오토바이와 차를 조심하라고 이야기했다. 한동안 경찰차가 순찰을 돌았고, 차와 오토바이도 조심스럽게 운전하는 듯 했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차와 오토바이 운전자는 여전히 속력을 내서 운전했고, 그건 민재가 보기에도 무척 위험해보였다. 어쩌면 나도 저렇게 죽을 수 있겠다, 하고 민재는 생각했다. 주머니에 쑤셔넣은 딱지를 주물럭거리면서 할머니가 하신 말씀을 생각했다. 수업시작을 알리는 종이 할머니의 말씀과 맞물려 민재의 귓가에 맴돌았다.
수업시간은 지루했다. 주머니에 불룩하게 솟아있는 딱지를 만지작거리며 선생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얼른 점심시간이 되었으면, 하고 민재는 생각했다. 그 순간,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딱지를 만지작거리던 손을 황급히 빼냈다. 선생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소지으며 이야기했다.
“어, 잘생김민재. 29쪽 맨 위에서부터 한 번 읽어볼까?”
민재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국어는 민재가 가장 어려워하는 과목이었다. 한국어 때문이었다. 들릴 듯 말 듯 읽어주는 수진이 덕분에 더듬더듬 읽기는 했지만, 너무 작은 목소리로 말해서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동…는…악교에… 갔습니다…아버지는 동…에게 도시…각을 ㅆ…쓰주어…”
아이들이 키득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민재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너무 부끄러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등허리에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엄마는 한 번도 책을 읽어주지 않았다. 아니, 읽어주지 못했다. 그림을 손으로 짚어주며 “이건 뭐야? 이건 뭐야?” 하고 짚어준 게 전부였다. 그럴 때마다 민재는 유치원에서 배운 단어들을 엄마에게 알려주곤 했다. ‘음매’하고 우는 것은 소, ‘어흥’하고 우는 것은 호랑이, '꼬끼오' 하고 우는 것은 닭. 그럴 때마다 엄마는 민재의 말을 따라했다. “소”, “닭”, “염소”. 엄마도 한국말이 어려웠겠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읽어주지 못한 거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민재도 마찬가지였다. 가나다라마바사아…그 이상은 몰랐다. 어려웠다. 몇 마디 더 읽으려고 했지만 더 읽지 못했다. 주머니의 황금딱지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민재 말고도 한글을 다 떼지 못한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그 자리에서 선 채로 눈물을 뚝뚝 흘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민재는 선생님에게서 어떤 불효령이 떨어질 지 몰라 두려워하며 잠자코 책만 쳐다보고 있었다. 잠자코 서 있던 선생님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굉장히 잘 읽었어. 수고했어요.”
불호령이 떨어질 거라 생각했던 민재는 따뜻한 선생님의 목소리에 안도하며 자리에 앉았다. 주머니 속 황금딱지 때문에 허벅지가 아팠다. 민재는 조심스레 딱지를 꺼내 책상 서랍 안에 넣었다.
“한국말은 영어나 다른 언어에 비해서 상당히 어려운 언어야. 너희들은 한국에 살고 있으니 한국말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 선생님도 아직 모르는 한국말이 많이 있거든. 이건 정말이야."
선생님은 잠깐 말을 끊었다. 그리고 민재를 바라보고 미소지은 뒤, 다시 아이들을 둘러보며 이야기했다.
“오늘 민재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을 했어.”
아이들은 선생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귓속말로 소근소근거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만약에 누군가가 선생님에게 잘 모르는 것을 용기있게 해보라고 이야기한다면, 선생님도 못했을 거야. 내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 그건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거든. 그런데 민재는 아주 용기 있게 책을 읽었어. 발음도 아주 좋고 목소리도 좋고. 굉장히 훌륭해. 너무 잘 읽었어. 민재에게 박수!”
아이들의 박수소리가 민재의 마음을 울렸다. 선생님의 칭찬이 익숙하지 않았기에,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몰랐다. 민재는 잠자코 선생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민재는 오늘 굉장히 멋진 일을 한 거야. 아주 용기있는 행동이었어. 잘 못해도 괜찮아. 우린 모두 부족한 게 있는 사람들이니까. 그렇게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거야.”
“성장이 뭐에요?”
현석이가 손을 들고 물었다.
“성장은, 자란다는 말이야. 키가 크는 것도 성장이지만, 마음과 생각이 자라는 것도 성장이거든.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거야. 부끄러운 일 앞에서 용기있게 도전하는 것, 어른이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거거든. 오늘 집에 가면 오늘 읽은 부분 꼭 한 번씩 읽고 오길 바랍니다.”
"네!"
참새와 같은 아이들의 목소리가 교실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