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한 지원군인 고모가 해준 아침밥은, 엄마가 해주던 밥보다 맛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아침에 아빠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즐거웠다. 아빠는 웃고 있었고, 한번도 하지 않던 이야기도 했다.
"그거 아나? 민재 낳고 내가 미역국을 끓였는데, 이 사람이 미역국을 못 먹는거라. 엄청시리 비리다 카데."
"안 먹던 사람이 먹으면 그럴 수 있제."
"아이, 그게 아이고, 소금을 안치고 간도 하나도 안해서 미역맛만 막 나는거라. 요리를 해 본 적이 있어야지."
"그라모 안돼. 요새 남자들 요리 몬하면 장가도 못가."
아빠에게 타박하던 고모가 민재와 동생의 엉덩이를 톡톡 두들기며 "민재는 나중에 요리 잘할끼야. 고모가 한번씩 와서 맛있는것도 해주고 할테니까."하고 웃었다. 확실히 고모가 만든 미역국과 반찬들은 맛이 있었다.
고모가 와 있는 몇일동안, 민재 가족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떠나지 않았다.
고모가 다녀간지도 벌써 3일이 지났다. 그 사이 민재의 황금딱지도 1개에서 3개로 늘어났다. 고모가 준 용돈 덕분에, 그토록 갖고 싶던 황금딱지도 3개나 가질 수 있었다. 봉투 안에는 민재가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큰 돈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황금딱지가 3개나 있으니 민재는 딱지치기에 있어서도 두려울 게 없었다. 민재의 딱지치기 한 방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패배의 쓴 맛을 경험해야 했고, 그럴 때마다 민재의 주머니는 불룩해져만갔다.
이 딱지들이 모두 돈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민재는 생각했다. 민재의 마음 속에는 돈이라는 것이 황금딱지를 마음껏 살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이었다.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아빠를 힘들게 하는 어떤 것으로 받아들여졌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아빠와 소연이를 버려두고 가도록 만든 모든 요인이 돈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민재도 마음이 몹시 아파왔다. 그럴 때마다 더 세게 딱지치기를 했다. 민재의 패댁질 한 방에, 대부분의 딱지들은 배를 뒤집었다. 아이들의 탄식소리를 들을 때마다 민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수업종이 울렸는데도, 아이들은 딱지치기에 집중하느라 김효숙 선생님이 창 밖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줄도 몰랐다. 무표정한 얼굴로 아이들을 바라보던 김효숙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을 때에도, 아이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허탈한 얼굴로 멍하니 민재의 뒤편을 바라보던 찬욱이 녀석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것을 발견한 뒤에야 비로소 민재도 뒤를 돌아보았고, 그제서야 마지막 딱지를 향해 있던 승리의 시선을 거두어들였다.
"내놔."
민재는 딱지를 꼭 쥐었다.
"내놔."
김효숙 선생님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선생님이 내민 손이 무척이나 커 보였다. 민재는 딱지를 손에 꽉 쥐었다.
"죄송합니다."
"내놓으라고."
민재는 손에 쥐고 있던 딱지를 김효숙 선생님에게 내밀었다.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채듯 민재의 손에 있던 황금딱지를 움켜쥔 김효숙 선생님은, 그러나 민재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다시 이야기했다.
"있는 거 다 내놔."
"이제 없어요."
"그럼 주머니에 있는 건 뭔데?"
민재의 주머니에는 아이들에게서 따낸 딱지들이 들어있었다. 불룩하다 못해 일부분이 주머니 밖으로 삐져나오기까지 한 딱지가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이랑 같이 한 거에요."
"내놔, 그것도."
"선생님, 잘못했어요. 한번만 봐주세요."
"내놓으라니까!"
"선생님, 김민재 가방에도 딱지 많이 있어요! 딱지 다 가져가세요!"
"맞아요! 김민재 가방 안에 딱지밖에 없어요!"
제갈미선과 같이 다니는 여자아이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어떤 녀석은"꼬시다, 김민재."하고 이야기했고, 대놓고 "저런 걸 돈 주고 왜 사? 남자애들은 진짜 이해가 안돼."하고 이야기하는 무리도 있었다.수진이만이 그렇게 말하는 여자아이들을 째려보며 "야! 친구한테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어떻하니?"하고 민재를 거들 뿐이었다. 그마저도 아이들의 야유와 고자질에 묻혀서 잘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 민재의 가방을 들고 왔다. 그리고 김효숙 선생님 앞에 민재의 가방 속을 열어보였다. 가방 안에는 딱지가 수북하게 들어 있었고, 부러진 연필과 지우개 가루, 먹다 남은 쫀드기가 비닐봉지에 담겨서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다. 김효숙 선생님은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민재의 가방에서 딱지만 골라서 꺼냈다. 손가락을 최대한 벌린 채 엄지와 검지만 이용해서 딱지를 꺼내는 김효숙 선생님의 모습을, 민재와 아이들은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야, 너는 나중에 뭐가 되려고 맨날 딱지치기만 하고 있니? 정신이 있는 애야, 없는 애야? 참나, 어이가 없네. 공부는 안하니?"
고개숙인 민재를 김효숙 선생님과 아이들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민재는 부끄러웠다. 꽉 쥔 주먹에서 땀이 배어나왔다.
그 때였다.
앞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들어왔다. 김효숙 선생님이 고개를 까딱하며 아는 체를 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민재와 김효숙 선생님을 번갈아보며 선생님이 이야기했다.
"무슨 일입니까?"
"아, 네. 얘가 수업시작종이 울렸는데도 딱지치기를 하고 있더라구요."
"아, 그랬습니까?"
"네. 그래서 딱지를 압수하려고 하다 보니까, 가방에도 책은 전혀 없고 딱지만 잔뜩 있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다 압수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고 합니다."
"압수요? 왜요?"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선생님의 대꾸에 민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김효숙 선생님도 당황했는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러다 '아무리 어린 학생이라도 자신이 잘못한 부분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그래야 앞으로 이런 일이 안 생기죠.'라고 이야기했다.
"책임은 어떻게 져야 된다는 말씀이신지요?"
"압수한다고 방금 말씀드렸잖아요. 그게 책임을 지는 거죠."
"그럼 앞으로 아이들이 딱지를 안 치게 될 거라고 확신하실 수 있습니까?"
선생님은 확신이라는 단어를 한 단어씩 천천히, 힘주어 이야기했다.
"그건 모르죠."
"그럼 딱지를 압수하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내일 새로운 딱지를 사오면 그만인데요."
김효숙 선생님은 말문이 막힌다는 듯, 가만히 서서 선생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손에는 민재의 황금딱지와, 크고 작은 딱지들이 가득 들어 있는 민재의 가방이 힘없이 들려 있었다.
"딱지를 압수하는 것과, 수업시간종이 울렸는데도 아이들이 딱지를 계속 치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아이들에게 딱지치기란 재미있는 놀이에 불과합니다. 재미있게 놀다 보니 종이 울리는 소리를 못 들은 것일 뿐이고요.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건 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딱지를 압수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두 번 다시 오늘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거나 실수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되는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은 방법이라고 선생님은 생각하세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선생님의 대답은 단순했다. 김효숙 선생님은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딱지는요?"
"저한테 주세요."
보일 듯 말듯하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김효숙 선생님은 손에 쥔 딱지와 가방을 선생님에게 건네주었다. 그 순간 가방에 있던 딱지와 부러진 몽당연필, 쫀드기 부스러기가 바닥에 쏟아졌다. 김효숙 선생님이 애써 당황스러운 듯한 몸짓으로 허리를 굽히자, 선생님이 저지하며 이야기했다.
“제가 할게요. 교실로 돌아가시죠.”
“네, 그럼 수고하세요.”
김효숙 선생님이 뒷문으로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선생님은 민재의 가방에서 떨어진 딱지와 심지가 부러진 몽당연필, 쫀드기가 담긴 비닐봉지와 표지가 뜯겨나간 책과 아무렇게나 구겨진 공책을 가방에 넣었다. 선생님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수업이 끝나는 내내 아무런 말씀이 없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자, 선생님은 민재의 가방을 들고 나가버렸다. 민재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민재는 두려웠다.
선생님이 호되게 혼을 내주었으면, 차라리 몽둥이로 몇 대 때려주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런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차라리 잘못에 대하여 혼이 나거나 매질을 당하는 게 더 마음 편한 일이라는 것을, 어린 민재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을 실망시키는 일 만큼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을 실망시켰다는 생각 때문에, 민재는 소리내어 울고 싶었다.
“실망이라는 것은 말이야, 내가 아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거나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마음이야. 혹은 그런 사람이 내 마음을 아주 아프게 할 만큼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느끼는 마음이기도 하지. 그걸 실망이라고 하는거란다.”
언젠가 아빠에게서 들은, 실망이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이었다.
아빠는 민재에게 자주 “아들. 아빠는 엄마한테 실망했어. 그것도 아주 많이.”하고 이야기했었다. 민재도 그랬다. 민재는 엄마에게 실망했다. 그립고 보고 싶은 엄마였지만, 아빠와 소연이를 놔두고 멀리 멀리 여행을 떠나버린 엄마가 그렇게 원망스럽고, 또 실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민재는, 실망이라는 단어가 아주 무섭고 두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망이라는 단어는, 아빠로 하여금 밤마다 술에 취하게 만들었고, 울게 만들었으며, 슬픈 눈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슬픈 눈으로 민재와 소연이를 쓰다듬다가 꼭 끌어안아주는 아빠, 그보다 더 슬픈 눈으로 잠든 아빠의 얼굴을 볼 때마다 ‘난 절대 아빠를 실망시키지 말아야지.’하고, 민재는 다짐하곤 했다. 사랑하는 아빠를 위해서라도,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일 따위는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선생님을 실망시켰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민재의 마음을 어두컴컴한 흙빛으로 만들었다. 민재의 마음에는 ‘실망’이라는 두 단어로 가득 채워졌다.
"쨔쟌!"
화장실 문 뒤에 숨어있던 선생님이 민재를 놀래키기 위하여 나타난 곳은, 민재가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려던 때였다.그간 모은 딱지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가방도 압수당한 채 집에 간다는 것은 9살짜리 어린 아이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민재는 생각했기에, 선생님의 그런 반응에 크게 놀라지도, 당황스럽지도 않았다. 선생님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심스레 고개 숙여 인사를 할 뿐이었다.
"잘생김민재, 가방 갖고 가야지."
"네."
"뭐, 무슨 일 있냐? 잔뜩 풀이 죽어서는."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선생님은 휘적휘적 앞장서서 복도를 걸어갔다. 문득 선생님이 뒤를 돌아보며 호통을 치지나 않을까, 민재는 내심 두려워하며 선생님의 뒤를 따라갔다.
교무실 문이 열리고, 선생님은 자신의 책상 앞으로 향했다. 민재도 주춤주춤 따라 들어갔다. 선생님의 책상은 깔끔했고, 두꺼운 책이 몇 권 꽂혀 있었다.
의자에 앉아서 책상서랍을 뒤적거리던 선생님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서랍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그리고 젤리와 과자가 든 작은 박스를 민재에게 건넸다. 민재는 상자를 받아들고 선생님의 눈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걸까, 민재는 궁금했다.
가만히 서서 약하게 어깨를 떨고 있는 민재의 손에 과자상자와 딱지가 든 가방을 건네주는 동안,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다. 민재는 가만히 서서 선생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 민재의 얼굴을 바라보던 선생님은, 조용히 미소지으며 민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뿐이었다.
어떻게 반응하는 게 옳은 행동인지 몰라서, 민재는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미소 띈 얼굴로 민재를 바라보던 선생님은 "오늘도 수고했다. 내일보자, 민재야."하고 인사해주었다.
"가도 되요?"
"그럼. 가도 되지."
"안녕히 계세요."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하고 뒤돌아서서 나가려는데, 선생님이 민재를 불렀다.
"김민재."
민재는 가슴이 쿵 내려앉는 듯 했으나, 가까스로 몸을 돌려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네?"
"대러미 깎아라."
"아, 네."
멋쩍게 웃는 민재를 향해 선생님은 호탕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민재의 가방 안에는 새 필통과 연필, 테이프로 붙인 공책과 책이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