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가 봐온 어른의 세계는 늘 어둡고 침침했다. 마치 늦가을 저녁에 어두운 방 안에서 홀로 앉아 어둑어둑해지는 창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처럼, 민재의 9살 인생 속에는 말할 수 없는 슬픔만이 가득했다.
"저거 마누라 도망가삐고 애비가 마이 애빗따. 잠도 잘 몬자고, 밤마다 그레 운다 아이가...돈이사 있다가도 없는긴데, 뭐 우야겠노...오야오야. 조용할 때 오기라. 내 걱정 하지 말고, 박서방이랑 은주나 잘 챙기라마. 오야, 끊는다이."
고모를 처음 본 것은 엄마가 없어진 후 몇일 뒤였다. 서울에서 작은 식당을 하고 있다는 고모는 민재를 보자마자 끌어안고 울었다.
"우리 민재 인제 우야노...우야노..."
짙은 화장품 냄새, 냄새와 달리 웬지 모르게 어울리지 않는 화장 때문에 이상하게만 보이던 고모의 얼굴, 과자를 달라고 떼를 쓰다가 눈이 마주친 사촌동생 은주의 불평 가득한 표정, 모든 것이 낮설어서, 민재는 눈물은 커녕 멀뚱멀뚱 서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민재는 자다가 일어나서 심하게 토악질을 했다. 저녁 식사로 먹은 짜장면 때문에 급체한 것이었다. 아빠, 민재, 은주, 할머니, 그리고 고모가 모두 놀라서 민재에게로 뛰어왔다.
거기에 엄마는 없었다.
민재는 세상에 혼자 떨어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씻는 동안 하염없이 울었다. 자다가 일어났는데 곁에 엄마가 없다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인 줄 몰랐기에, 민재는 울기만 했다.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민재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오빠는 인제 어옐라고?"
"..."
"새언니는 연락이 아예 안되는가베.
"그렇지 뭐."
"베트남에 한 번 다녀와야 안되겠나? 찾는 시늉이라도 해봐야지. 가만히 있으면 뭐, 답이 나오겠나..."
"아 듣는다. 먹고 이야기하자."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아서, 민재는 고개를 숙이고 먹었다. 면발 위로 눈물 방울이 툭, 하고 떨어졌다. 끊어지지 않는 면발은 민재로 하여금 쉼 없이 젓가락질하게 만들었다.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닦을 겨를도 없이, 민재는 짜장면을 먹었다. 급체한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고모는 그 뒤로 종종 민재의 집을 방문했다. 고모가 오는 날이면 민재는 괜히 기분이 들떠 있었다. 고모는 민재를 보러 올 때마다 항상 맛있는 과자와 장난감을 선물로 사들고 왔기 때문이다.
"아이고, 우리 민재 잘 있었나?"
고모는 민재를 꼭 끌어안아 주곤 했다. 그런 고모가 싫지 않았지만, 생선 비린내 때문에 얼굴이 조금 찡그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민재는 아프도록 자신을 껴안고 있던 고모의 품에서 벗어나자마자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생선비린내를 피하고 싶어서였다. 그런 민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모는 "민재 쑥스럽나? 고몬데 뭐 어떻노?"하고 웃어넘겼다.
고모가 온 날은 집안에 생기가 돌았다. 인공적인 빛으로 누가 밝은 분위기를 연출해내는 것도 아닌데, 밝은 성격을 가진 고모가 집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활기가 돌았다.
고모가 오면, 그 날 저녁은 무척 풍성한 식사가 마련되었다. 두툼한 고등어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져서 밥상 위에 올랐고, 된장찌개에는 새하얀 두부와 큼직하게 썰린 돼지고기가 고소한 향을 풍겼다. 고소한 계란말이, 아삭한 김치, 참기름으로 버무리고 깨를 뿌린 시금치도 함께 밥상 위에 올랐다. 평소 가볍게만 느껴지던 밥상이 그렇게 풍성할 수 없었다.
"기사들이 많이 온다 아이가. 반찬이 부실하면 기사들도 안온다. 그 양반들은 밥심으로 일하는 사람들인데."
양반, 밥심. 민재에게는 어색한 단어들이었다. 어른들의 대화란 그런 것이구나, 하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장사는 잘 되나?"
"동네장사 아이가. 단골도 좀 생기고 하니까 그냥 적당히 먹고 살지."
"그래, 뭐 밥만 먹고 살면 안되겠나."
어른들의 대화는 늘 그렇게 이어졌다.
그리고 밤이 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 돈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돈. 엄마가 우리를 두고 떠난 것도 돈 때문이구나, 민재는 생각했다. 닫힌 방문 사이로 고모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엄마가 카데. 얼마나 날린기고?"
"모르겠다. 대충 봐서는 한 오천 되는 모양이다."
"하이고마...도박했나?"
"...그런 모양이다. 동네에 베트남 여자들이 몇몇 돌아다니는데, 그 무리랑 어울리가 댕긴 모양이드라."
"미친년 아이가! 거 고마 놔뒀나? 확 직이뿌지!"
"고마 됐다마."
"아이, 돈 오천만원이 아 이름도 아이고, 어디 낮짝 시퍼런 여편네가 밥 처먹고 할 짓 없어가 도박판을 돌아댕기노? 미친게이 아인가베!"
"아들 잔다, 고마해라 마."
고모는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민재는 방문을 살짝 열었다. 그 순간 고모와 눈이 마주쳤다. 왜 방문을 열 때마다 끼익, 하는 소리가 나야 하는 건지, 민재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불콰한 얼굴을 한 고모는 웃는 얼굴로 민재를 향해 손짓했다. 민재는 한숨도 자지 못했지만, 졸린 척 눈을 비비며 고모 곁으로 다가갔다.
"민재 안잤나? 아이고, 고모가 시끄럽게 했제?"
고모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고모하고 아빠하고 이야기한다고 하다 보이 목소리가 커져삣네. 고모가 미안타."
고모는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흰 봉투를 하나 꺼냈다. 니는 아한테 뭔 봉투를 다 주노, 하고 극구 말리는 아빠의 손을 탁 뿌리치더니 민재의 손에 꼭 쥐어주었다.
"고모가 민재 줄라고 따로 챙겨놨다. 이걸로 맛있는 거 사먹고 친구들이랑 사이 좋게 지내거레이."
"감사합니다."
고모는 민재의 엉덩이를 톡톡 두들기고는 볼에 쪽, 하고 뽀뽀했다. 민재는 봉투를 꼭 쥐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직 닫히지 않은 방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으로 봉투 안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