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가치와 품격

by 전대표

"모든 시민이 출판을 통하여 전 국민에게 발언할 수 있는 이 시대에, 인간을 가르치는 재능이나 그들을 감동시키는 천부적 소질을 지닌 자들, 즉 한마디로 작가들은 마치 로마와 아테네의 웅변가들이 민회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있었던 것처럼, 흩어져 있는 민중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1775년, 프랑스의 정치가 말제르브 Chrétien Guillaume de Lamoignon de Malesherbes가 아카데미 프랑세즈에 입회할 때 했던 연설문 중 일부다. 그는 연설에서 ‘인간을 가르치는 재능이나 그들을 감동시키는 천부적 소질을 지닌 자들’이야말로 작가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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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저서 출간이나 등단을 통해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린 사람을 작가라고 이야기한다. 나름의 결과물이 있다는 말이다. 그만큼 생각의 밀도가 깊은 사람이므로 결과물이 없는 사람에 비해 호평과 신뢰를 얻기에도 수월하다. 반면에 책이나 그와 대등한 작품을 출품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작가라고 불린다면, 말제르브가 이야기한 '인간을 가르치는 재능이나 그들을 감동시키는 천부적 소질을 지닌 사람들'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말제르브의 말을 곱씹어 생각해보면, 작가는 책을 출간해본 경험이 있거나 그에 대응하는 출판물을 발행한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라기보다는 협소하지 않고 깊이 있는 생각을 계속해서 진행시켜 나가는 사람에 더 가깝다. 작가는 일반적인 사람들에 비해 생각과 분석의 크로스체크를 일상화한 사람들인 경우가 더 많다는 말이다.


아는 사람은 많아도 읽어본 사람은 별로 없다는 책이 있다. 제임스 조이스 James Joyce의 [율리시즈 Ulysses]다. 사실 나도 처음 몇 장 밖에 읽어보지 못했다. 인간이 쓴 책에 불과한데 난해해봤자 얼마나 난해하겠는가, 싶어 펼치자마자 바로 덮은 뒤 수년간 책장에 꽂아둔 책이다. 난해하다는 말이 ‘다소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뜻이 아니라, ‘이해 자체가 불가능하다’라는 뜻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게다가 초판본의 마지막 문장 끝에는 커다란 점이 마침표로 찍혀있었는데, 수많은 평론가들이 '[율리시즈] 마지막 장의 커다란 마침표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기도 했으나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이라고 불리는 제임스 조이스가 '마침표를 찍은 적이 없으며, 단순히 인쇄 오류였다.'라고 일축해버렸다는 일화를 들은 뒤로는 [율리시즈]에 대한 호감도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율리시즈]라는 책이 뛰어난 문학적 가치를 갖춘 책으로 인정되기보다는, 극도로 민감하고 폐쇄적인 정신세계를 갖춘 젊은 작가가 아무 의미 없이 제멋대로 나열한 단어의 조합을 묶은 '목침'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오디세이아]와 [일리아스]를 어느 정도 접하고 난 뒤에야 한 번쯤 읽어봄직한 책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율리시즈]가 '나에게 있어서 문학작품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우연히 접한 [율리시즈] 집필 당시 제임스 조이스의 일화 때문이었다. [율리시즈]를 집필하던 중 7개의 단어를 써놓고 절망에 빠져 있는 제임스 조이스를 위로하던 친구에게 "이 단어들을 어떤 순으로 나열해야 가장 훌륭한 나열인지 고민이다."라고 이야기한 그의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아주 엄격한 잣대를 기준으로 [율리시즈]를 집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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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쓸 때 단어의 나열이 무어 그리 대단한가 생각하는 사람을 위하여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같은 말이지만 다른 말이다. 목적을 가진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아래 예시가 무슨 말인지 이해할 것이다.


1. 밥을 먹었다.

2. 찬물에 밥을 말아먹었다.

3. 그에게 밥은 생존에 불과했다.

4. 허기를 채우느라 허겁지겁 먹었다.

5. 고슬고슬한 밥을 보는 순간,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당신은 어떤 문장을 선택하겠는가?


글을 쓸 때 앞뒤 상황을 유추해보고 가장 적절한 문장을 선택하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어떤 게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인 문장인가?” 하는 고심을, 작가는 한 문장 한 문장 기록하는 매 순간마다 반복해야 한다는 점이다.

책을 집필할 때는 일반적으로 5번 정도의 퇴고를 거치고 나면 더 이상의 퇴고점을 찾는 게 어렵다. 글쓴이의 수준 내에서 가장 완벽한 문장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 이상의 좋은 문장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글쓴이의 평소 독서역량과 필력, 정보 수집량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며, 원고의 종류와 편집부의 재량에 의해 글의 방향과 내용이 다소 달라진다.


그런데 글쓰기는 조금 다르다. 글쓰기는 책처럼 한정된 주제 안에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향성을 갖고 있다는 특수성이 있다. 아무리 많은 퇴고를 거쳐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책을 완성된 사진집이라고 이야기한다면, 글은 한 장 한 장의 사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글이라는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예술성을 띠고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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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시절부터 나는 사진을 찍어왔는데, 취미 경력으로만 16년째에 접어든다. 그래서 사진을 볼 때 습관적으로 전문가의 사진과 비전문가의 사진을 구별한다. 사진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라면 다양한 화각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싶어서 다양한 렌즈를 구매한다. 모델 촬영에 최적화된 렌즈도 구매하고, 공연용 망원렌즈도 구매한다. 여력이 있으면 비싼 카메라도 구입한다. 동호회에서 출사도 나가고, 새벽 일출 사진이나 일몰 사진, 새벽 물안개가 올라오는 강가에 고고한 자세로 홀로 서 있는 학다리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가장 가볍고 편안한 카메라 한 대, 인간의 시각과 가장 일치하는 화각을 가진 50mm 렌즈만 하나 남긴 채 모두 처분한다. 대다수 사진작가들의 일반적인 과정이다.


결국은 본질의 문제라는 것이다. ‘사진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로버트 카파 Robert Capa나 유진 스미스 William Eugene Smith, 빈민의 사진가 최민식뿐만 아니라 모든 사진작가들이 가슴속에 품고 있는 위대한 질문이며, 그들 모두 답을 알고 있다. ‘찰나의 순간’이다.


글쓰기도 사진과 비슷하다. 예술과 미디어에 가장 가까운 분야라는 측면에서도 그러하지만, 영구성의 특징을 가진다는 점에서 본질이 우선시 된다. 사진, 그리고 글에서 화려한 기교는 불필요한 찌꺼기에 불과하다.

글쓰기를 시작할 때 필요한 것들이 있다. 글은 쓰는 사람의 가치와 철학, 그리고 양심이다. 이 모든 것들이 뒷받침되어야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화려한 이론적 지식이나 정보는 한계가 있다. 글쓴이가 글을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동안 반드시 글쓴이의 내면세계가 글에 스며들게 되어있다. 그 외에 필요한 것은 연필과 지우개뿐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본질에 대해 다룬 책은 경영의 시초가 되며, 자기 계발의 근간이 된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멕베스>는 모두 인간 본질에 대해 기록한 책이다. 세기를 뛰어넘어 위대한 작품으로 남을 수 있는 이유다. 물론 고전만이 위대한 작품이라고 말할 순 없다. 개인적으로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 라이어>와 <타인의 해석>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잘 쓴 글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책이었다. 빼곡하게 밑줄을 긋고 형광펜으로 체크해둘 정도로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기자로 활동하며 많은 글을 읽고 쓰는 동안 다듬어진 자세와 필력이 아니었을까. 반면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은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어릴 때부터 숱한 고생을 해야 했는데, 그때의 경험이 훗날 세계적인 비극소설 [모비딕]을 집필하는 데 귀중한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나의 경험과 가치 기준점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글의 수준 역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는 중요한 예다. 훌륭한 글을 쓰기 위해 꼭 몽블랑 만년필이 필요한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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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책을 출간하기 전에 책을 한 번 써보겠다고 펜을 부여잡고 하루 종일 끄적거려도 A4용지 한 장 분량을 쓰는 게 불가능했다. 6개월 동안 열심히 노력했는데 다 쓴 자료를 모아보니 분량이 A4용지 90페이지가 채 안됐다. 그마저도 책으로 엮을 만한 내용이었다기보다는 어쭙잖은 수준의 글이었다. 무척 심란했고, 되려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같아서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서점에 빼곡하게 꽂혀있는 책은 도대체 누가 쓴 책인지, 그 사람들은 300페이지 분량의 책을 어떻게 쓰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독서와 글쓰기가 일상생활의 습관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글쓰기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학문이나 이론으로 정립되는 기술이 아니라 언어의 문서화라는 점을 깨닫는 순간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글쓰기에 대한 어려움과 두려움도 사라졌다.


나에게 있어서 글쓰기란 취미, 혹은 책을 쓰기 위한 과정 그 이상의 어떤 것이었다. 글을 쓰면서 알게 된 작가분들의 대다수는 공통적인 특징을 갖고 있었다. 상대방을 편안하게 자세가 습관화되어 있었고, 경청하는 데 능했으며, 조리있게 이야기하는 능력이 있었다. 나 역시 그분들을 통해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었고, 경청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었으며, 나의 의견을 조리 있게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기술도 배울 수 있었다. 글쓰기의 기술은 그 자체만으로도 품격을 갖춘 인격체로 거듭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몸소 체득할 수 있었던 셈이다.


이처럼 글쓰기를 통해 세상이 좀 더 풍요롭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글쓰기는 즐거움으로 시작해야 하며, 끝날 때에도 즐거움으로 끝나야 한다. 돈, 명예, 혹은 누군가에게 존경받기 위하여 글을 쓰기 시작한다면 탁한 글이 써지는 것은 당연하다. 존경받는 모든 역사적 영웅들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본보기가 되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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