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 비

비가 오는 날에는

by 전대표

연기를 처음 배운 것은 26살 때 일이다.

인생에 이렇다 할 목적의식 없이 살다가 우연히 배운 연기는 신세계였다. 살면서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연기를 접하는 순간, 앞으로 내가 평생 할 일은 이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예술가들은 스스로 예술을 한다는 것의 자부심과 희열로 매 순간을 살아간다. 일반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잘 이해할 수 없는 세계관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이해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그의 격려와 칭찬이 없었더라면, 연기는 내게 즐거움이 아닌 이해할 수 없는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의 독무대 정도로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연출가이자 나의 연기 선생님이었던 그는 윤대성 교수의 외아들이었다. 동랑 유치진 선생의 제자이며 드라마센터 1기 수료생이었던 윤대성 교수는 한국 연극계의 구루와도 같은 존재였다. 걸음걸이, 움직임, 목소리 톤, 발음의 정확성만으로 프로인지 아닌지 분별할 수 있는 연극판에서, 그의 아들이자 촉망받는 연출가 선생님은 끔찍이도 나를 아꼈다. 틈만 나면 불러내서 먹을 것을 잔뜩 사주곤 했다.


"안 그렇게 생겼는데 먹는 거 좋아하더라. 많이 먹어라."


공연을 준비할 때는 우리 모두의 선생님이었으나, 10살의 나이차가 났던 그는 "둘이 있을 때는 그냥 형이라고 불러라."하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모두 선생님과 형을 번갈아가며 그를 불렀다.


지독한 어려움 가운데서 보낸 두어 달 간의 시간 동안,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조용히 내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었고, 적절한 조언을 해주었다.


"너는 연기에 끼가 있다. 지금 바로 프로무대에 나가도 된다. 근데 사투리가 심하다. 반드시 서울말을 배워라."


연기 초년생이었던 나와 프로 중의 프로였던 그와의 간극은 수많은 밤을 지내며 나눈 우리의 대화 속에서 조금씩 좁혀져 갔다.


그가 죽은 것은 내가 서른 살, 그가 마흔 살이 되던 해였다. 심장마비라고 알려졌으나, 그의 카카오톡 메신저에는 '모두 안녕'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는 비가 오는 날을 좋아했다. 어둡고 캄캄한 하늘 아래 쏟아지는 빗방울이 좋다고 했다. 나는 비 오는 게 싫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신발이 젖는 게 싫어서다. 그가 죽고 난 뒤, 비가 오는 날도 그리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비가 내린 다음날 맑은 하늘을 보는 게 좋았다.


비가 오는 날에는 연극 대본이나 <배우론>을 썼다. 출판사에서 원고가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나, 언제부턴가 대본 쓰는 재미가 사라졌다. 연기보다 글쓰기에 관심이 더 생기면서 계약도 결렬되었다. 영화배우를 꿈꾸고 있다고 주변에 이야기하지만, 솔직히 허상에 불과하다. 내년이면 그가 죽은 지 10년째 되는 해다. 나도 그의 나이가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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