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아내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다.
언젠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어떤 여자분이 통화하는 내용을 들었다는 거였다. 별다른 내용도 아니었고 아는 분도 아니었는데, 통화를 하는 내내 "아 그래? 정말 감사하다. 정말 감사하네. 응, 그거 너무 좋다."하고 이야기하더라는 것이다. 짐짓 아닌 척 서 있었지만, "저 분과 친구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내심 생각했다는 거였다. 아쉽게도 그분은 다비드 북카페 바로 아래층에서 내렸고, 아내는 문이 닫힐 때까지 그분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노라고 말해주었다.
"참 좋은 분 같더라. 확실히 거기는 좋은 기운이 있어서 그런지, 좋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 같아."
언양에는 제법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자그마한 빌딩이 하나 있다. 그 빌딩 꼭대기층에는 다비드 북카페라는 이름의 카페가 하나 있다. 아내 덕분에 알게 되어 단골이 된 카페지만, 글을 쓰거나 사색이 필요할 때면 꼭 들르는 단골 카페다.
언젠가 길을 가다가 간판만 보고 얼마 못 가서 망할 곳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언양읍이라는 곳 자체가 '읍'이라서 연세 지긋한 분들이 주로 살고 있고, 울산광역시 소속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읍'이기 때문에 이렇다 할 문화시설이란 게 없으며, 그렇다 보니 '북+카페'를 찾을 만한 젊은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게다가 빌딩 꼭대기에는 엄청나게 큰 간판이 하나 걸려있는데, 다비드 북카페를 모르고 지나는 사람들은 흔한 시골 카페 정도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처럼 디자인된 간판이 걸려 있다. 그러다 그 북카페를 먼저 방문한 아내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고, 이후에 별생각 없이 한 번 가볼까 했다가 나 역시 다비드 북카페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놀랍게도 이 카페는 장사가 꽤 잘된다. 들어가는 순간 흔한 동네 카페가 아님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다비드 북카페에 처음 올라와보면, 특유의 분위기와 매우 친절한 아르바이트생들에게 홀딱 반한다. 시골에 위치한 카페 치고 이렇게 인사를 잘하는 카페도 드문 데다, 아늑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기 위해 소소한 부분까지도 세밀하게 꾸며두었다. 유럽풍 대형 북카페를 모티브로 했다고 하는데, 잔잔한 음악과 따뜻한 커피 향이 무척 매혹적이다. 따뜻한 분위기, 복층 구조로 설계되어 있어 2층에서도 커피를 마실수 있는데, 계단 아래에 있는 케이브(CAVE, 작은 방)도 아주 깔끔하고, 커피 향도 좋다. 참고로 여기는 텃밭도 무료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해준다. 상추, 깻잎, 호박, 고추 같은 것을 갖다 심어도 되는지 모르겠으나, 여하튼 단골을 잡아두기에도 참 좋은 아이디어구나 생각했다.
두 번째 책을 출간할 때, 늘 가던 단골 카페가 있었다. 사무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자그마한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는 2,500원이었고, 사장님이 직접 만든 샌드위치가 3,000원인가 3,500원인가 했다. 그리 친절하지도, 그리 딱딱하지도 않은 카페였다. 그 카페는 무척 조용했다. 내가 갈 때만 손님이 없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오후 1시부터 저녁 무렵까지 내가 유일한 손님이었던 적도 여러 번이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촉촉한 빗소리를 들으며 글을 썼지만, 사장님도 나와 같은 사색에 잠겼는지는 의문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얼마나 애태우며 장사를 했을까 싶다.
그 카페에는 상당히 훌륭한 공간이 있었다. 카페를 들어가면 테이블이 2,3개 놓여 있는 게 전부였는데, 안쪽으로 돌아서 들어가면 모서리에 테이블이 하나 더 있었다. 그러니까 입구에서는 보이지 않는, 한 두 명만이 앉을 수 있는 좁은 공간이 안쪽에 있는 거였다.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그 카페를 다니면서, 그 자리에 사람이 앉아있는 걸 거의 보지 못했다. 그야말로 나만의 아지트였던 셈이다.
틈날 때마다 거기에서 글을 썼다. 2,500원짜리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켜놓고,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서 원고만 썼다. 노트북과 책 한 권 외에 딱히 챙길 것도 없었다. 주로 에버노트에 글을 썼고,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 원고를 정리하는 식이었다. 출간 계약서도 그곳에서 썼고, 차기원 고도 그곳에서 썼다. 세어보진 않았으나, 그 카페에서 쓴 원고만 5권 분량은 될 듯하다. 글을 쓰는 게 어찌나 재밌던지, 평생 이렇게 살다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신나게 글을 썼다. 몸이 아픈 날에는 혼자 그 구석에 쭈그려서 쪽잠을 자기도 하고, 더운 한여름날에는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아이패드만 들고 나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글을 쓰기도 했다.
이후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그 카페에 갈 일이 없어졌다.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으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프랜차이즈 카페였기에 큰 감흥은 없었다. 크고 넓은, 분위기 좋은 카페는 수도 없이 많지 않은가. 나 같은 하잘것없는 글쟁이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생각 중 하나가 카페의 고유함이다. 카페는 커피를 마시는 곳이기도 하지만, 글을 쓰면서 생각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이 글쟁이와 카페가 공유하는 거의 유일한 특징이다. 이후 나는 훌륭한 작가가 되겠다는 포부를 무참히 짓밟는 세상에서 간신히 살아남았고, 글쟁이는 은은한 커피 향과 촉감이 좋은 가죽소파가 있는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뿐만 아니라 온갖 쌍욕이 난무하는 노가다 현장이나 지옥철 안에서도 깊이 있는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몇 년이 지나 다시 그곳에 갔을 때, 그 카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고 부동산 사무실이 들어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