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의 최종판
썸.
쉽고 단순한 이 단어 속에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때로는 슬픈, 수많은 마음의 결들이 묻어 있다. 사랑으로 가득한 썸이 있는가 하면, 슬픔과 아픔만이 가득한 썸도 있다. 애절하다 못해 애틋하기까지 한 썸도 있고, 보기만 해도 달달하기 그지없는 썸도 있다.
나에게 있어서 썸의 최종판은 아내와 아들이다. 굳이 순서를 매기자면 아내가 첫 번째가 될 것이고, 아들이 두 번째가 된다.
아내는 해외봉사단 후배다. 해외봉사단 모임에 가서 만났다.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지만 별 감흥은 없었다. 예쁘게 생겼네, 정도였다. 연인이 된 것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다.
서울에서 공부하다가 지방으로 내려온 어느 날,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울산에 오셨어요? 저 울산 사는데요.”
“아 그래? 밥이나 한 번 먹자.”
“언제요?”
“다음 주에.”
아내와 처음으로 단 둘이 만나는 날은 사랑니를 뺀 날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줄 몰랐다.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에서 2시간 30분을 지각했다. 그럼에도 아내는 화를 내긴커녕 한참을 깔깔거리며 웃었다.
아내는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요조숙녀보다는 말괄량이에 가까웠고, 하늘거리는 원피스보다는 트레이닝복을 즐겨 입었다.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처럼 가냘픈 여성이 나의 이상형이었는데, 아내는 합기도 4단의 시범단 출신 사범이었다. 결혼을 생각해야 할 나이에 우연처럼, 그러나 운명처럼 다가온 아내는,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하고 생얼이 예쁘다는 것을 제외하면 나의 이상형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20대 때 나에게 아내는 그런 존재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단어만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운명과 같은 시간들이 지나고 난 뒤에 우리는 결혼을 했고, 부부로서의 시간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결혼 이후 세상으로부터 유혹받지 않고 오롯이 나의 기준을 세우기까지 걸린 시간은 7년이었다. 그 7년 동안 아내는 가정의 뿌리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어려움을 이겨냈던 것 같다. 밝고 유쾌한 아내의 성격 덕분에 어려움은 살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으로 여겨졌고, 그 기간 동안 만들어진 사람을 대하는 자세, 어려움과 위험에 맞서 싸우는 담대함, 이 모든 일들 가운데 초연한 마음의 자세를 갖출 수 있는 지혜들이 다양한 기회를 얻는 초석이 되어주었음은 물론이다. 그 사이에 25살의 아내는 35살이 되었고, 29살의 나는 불혹不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불혹. 세상으로부터 유혹받지 않는 나이.
나이가 든다는 것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고 누군가 이야기했지만, 또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이루지 못한 꿈들 때문에 어금니로 흙을 깨무는 것이 두려워지는 순간, 별빛이 빛나는 어두움이 서서히 눈을 덮어오는 그 순간이 가까워오고 있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 혼자 태어나 왕으로 살다가 떠날 세상이라면 죽음이 두렵지 않으련만, 아내와 아들의 얼굴을 생각하면 펑펑 울고 싶은 감정들이 수시로 올라온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다.
아내와 둘이 있을 때면, 아들은 엄마만 찾는다. 옷을 입혀주는 것도 엄마가 입혀줘야 하고, 밥을 떠먹이는 것도 엄마가 떠먹여 줘야 하고, 안아주는 것도 엄마가 해줘야 한다.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그러다 아내가 출근하고 없는 사이, 아들은 오롯이 나에게 온 마음을 맡긴다. 아들을 품에 안고 씻기면서 "우리 아들은 세계 최고의 아들이야. 우리 아들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리더가 될 거야."하고 속삭인다. 얼룩말을 '엄무애'라고 하던 아들이, 엉덩이를 '옹동이'라고 하던 아들이, 깜짝 놀랐어요를 '깜딱 놀랐떠여'하고 이야기하던 아들이 조금씩 자라날수록, 우리가 나누는 마음과 시간은 그만큼 짧아지게 되리라. 트로이의 위대한 장군 헥토르가 아들을 품에 안고 "내 아들이 싸움터에서 돌아올 때 사람들이 '그는 아버지보다 훨씬 훌륭하구나!'하고 이야기할 수 있게 하소서!"하고 기도한 것처럼, 폭풍우가 몰아치는 어두운 세상 속에서 초연한 왕처럼 홀로 위대한 걸음을 걷게 되길 바라본다. 하루, 또 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와 아들을 향한 사랑과 고마움이 작은 썸에서 커다란 썸으로 만들어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