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려가듯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1980년 5월 20일 전남 매일신문 기자들의 공동사직서 내용이다.
2000년 1월 1일 첫 상영된 설경구 주연의 <박하사탕>은 당시까지만 해도 무명배우에 불과했던 설경구를 단숨에 초대형 배우로 성장시킨 플래시백 영화다. 국가폭력으로 인해 개인의 삶 전체가 파멸로 점철되는 이야기의 구성을 통해 역사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 대본을 쓴 이창동 감독은 젊은 시절 5.18 운동의 경험을 통해 큰 충격을 받고 <박하사탕>의 대본을 썼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취미든, 직업이든 모름지기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질문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무엇을 보았는가?' 하는 질문이다.
오늘 무엇을 썼는가, 하는 질문은 칼을 갈듯이 글 쓰는 것을 삶의 철칙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있어 중요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인가 쓰기 위해서는 먼저 경험한 내적 자산이 있어야 한다. 손으로 만진 것이든, 눈으로 본 것이든, 들은 것이든, 피부로 체감한 것이든, 글로 써낼 수 있을 만한 경험이 뒷받침되어 있어야 글의 글감을 이룰 수 있다.
27년간 지속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인류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전쟁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그리스 희비극 문학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시기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전쟁의 참상을 다양한 작품으로 남겼는데, 소피스트들의 논리적이지만 허점 가득한 궤론을 비판하는 [구름], 명예로운 과거를 등에 업고 재판하는 재미로 노년을 즐기는 노인들과 제멋대로 사는 젊은이들을 풍자하는 [벌], 전쟁의 종식을 열렬이 소망하는 [평화] 등이 있다.
내가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이 글의 주제가 될 수 있으며, 작품이 될 수 있다. 길가에 떨어진 낙엽 속에서도, 무심코 마주친 앱 광고에서도, 큰맘 먹고 구매한 고급 코듀로이 재킷에서도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 오늘 내가 먹은 음식,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집을 향해 바쁘게 걸어가고 있을 개미, 아내의 지갑 속 신분증에도 많은 주제와 이야기가 숨어있다. 이야기의 가지치기는 장발장만 해야 하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