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지금 일어나는 일은 여러 해 전에 시작된 시작된 과정의 산물일 뿐이다. 첫 단계는 무심코 했던 은밀한 생각이었고, 두 번째는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는 생각에서 언어로, 그리고 이제 언어에서 행동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1984> 246p, 조지 오웰, 소담 출판사
글을 쓰는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의 인생은 얼마나 비참하고 초라해져 버렸을지 모른다.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도 없고, 가족도 이해하지 못하고, 주변을 둘러봐도 하루하루 먹고사는 데만 급급한 사람들밖에 없는 인생이라면 세상을 떠나버리는 것이 차라리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라고 하며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게 인생이라면 그보다 잿빛 하늘이 어디 있을까?
<1984>의 주인공은 어둡고 음울한 하늘 아래에서 글을 썼고, 생각을 하고, 결국 언어와 행동으로 신념을 관철시켰다. 보고, 듣고, 말하는 모든 것이 도청되고 감시당하는 사회 속에서 생각과 의식의 자유로움만큼은 통제받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글을 쓸 때 감각에 집중한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세밀하게 글로 기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잘 쓰인 책과 글은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과 느낌들도 활자로 표현함으로써 감각을 자극시키는 힘이 있다. 그리고 이는 어떠한 신념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는 강력한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찌는 듯이 무더운 7월 초의 어느 날 해질 무렵, S골목의 하숙집에서 살고 있던 한 청년이 자신의 작은 방에서 거리로 나와, 왠지 망설이는 듯한 모습으로 K다리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
가장 완벽한 소설의 첫 문장이라고 알려진 <죄와 벌>의 첫 문장은, 이제 막 세상에 발걸음을 옮기는 한 청년의 움직임을 담고 있다. 그가 누구였는지, S골목은 어디였는지, K다리는 어디인지도 알 수 없지만, 이후 청년의 중얼거림을 통해 감각을 활자화한다는 것의 의미를 배울 수 있다. 우리의 글도 그러해야 한다.